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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5 17:52 수정 : 2005.09.16 14:08

일본의 대표적인 이종격투기게임인 ‘프라이드’의 ‘그랑프리 2005 결승전’에서 헤비급 타이틀을 차지한 러시아 출신 효도르가 상대인 크로캅을 쓰러뜨린 뒤 공격하고 있다. 이종격투기는 위험하긴 하지만 패러글라이딩이나 스키보다 더 위험하진 않다고 한다. 사진제공 DSE 제공

로마시대 글래디에이터 이후로 싸움구경은 인간이 즐겨온 놀이 중 하나 물렁뱃살에도 ‘얼음 파운딩’ 강력한 효도르와 크로아티아 국회의원인, 하이킥 유명한 크로캅의 막싸움 같은 이종격투기는 엄연한 스포츠 김일의 박치기는 ‘반칙’이라는 룰이 있는 ‘게임’이다

이재현의 인물로 세상읽기/이종격투기 효도르와 크로캅

지난 8월 말 열린 세기의 대결에서 효도르가 크로캅을 이겼다. 일본의 대표적인 이종격투기 게임인 ‘프라이드’의 ’그랑프리 2005 결승전’의 헤비급 타이틀 매치에서 러시아의 효도르가 크로아티아의 크로캅에게 3:0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상당수의 팬들은 멋진 하이킥을 구사하는 크로캅이 이기기를 바랐지만 다수의 전문가들과 매니아들의 예상대로 효도르가 승리했다. 그것도 부상을 당한 한쪽 손을 제대로 쓰지 않은 채로 말이다.

나는 최홍만이 등장했던 지난 봄의 ‘K-1’ 경기를 놓치고 매우 안타까워 했던지라 이번 경기는 며칠 전부터 고대하고 있었다. 경기를 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어린 시절 우리 사내아이들의 막싸움과 달리, 한쪽이 피를 흘려도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다음은 효도르가 자주 무릎을 들어올려 크로캅의 미들킥을 봉쇄한 것인데 나중에 일본 격투기 용어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 기술을 ‘스네 블록’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네란 일본말로 무릎이란 뜻이다.

1라운드에서 하이킥을 구사하다가 효도르의 태클에 걸려서 넘어지면서 ‘테이크다운’된 것이 크로캅의 패인으로 보인다. 하이킥을 구사하기 바로 전에 크로캅은 효도르의 얼굴에 유효타를 두어 방인가 먹인 바 있었는데, 섣불리 하이킥을 쓰기보다는 좀 더 계속해서 펀치를 먹이는 쪽으로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크로캅의 유명한 하이킥에 대해 효도르가 이미 맞받아칠 대책을 세워두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바닥으로 넘어져서 깔린 상태에서는 효도르를 크로캅이 당해낼 수 없었던 게 당연하다.

입식 타격이 전문인 선수와 그라운드 기술이 전문인 선수의 대결에서는 종종 ‘이노키-알리 상태’가 다소간에 지루하게 지속되기도 하는 법인데 이번 경기는 용호상박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시종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다. 처음부터 공세적으로 타격전에 나선 효도르의 예상밖 작전도 훌륭했고, 입식 타격전에서는 사이드 스텝으로 돌다가는 기회를 봐서 치고 빠지는 전법으로, 또 그라운드에서는 나름의 ‘테이크다운 디펜스’ 기술로 대응한 크로캅의 선전도 볼만한 것이었다.

피를 흘려도 끝나지 않는 싸움


크로캅은 본명이 ‘미르코 필로포비치’다. 격투기는 15살의 무렵부터 태권도를 시작했고 그 후 가라테와 킥복싱 등을 익혔다고 한다. 링 네임인 크로캅은 ‘크로아티아의 경찰’ 출신이라는 뜻이다. 일본에 있어서는, 당초 입식타격계 이종격투기인 ‘K-1’에서 활약하다가 종합격투계인 ‘프라이드’로 옮겨서 활약해 왔다. 1974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미르코는 어린 시절에 영화배우 장 클로드 반담에 매료되어 격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크로캅은 긴 손발을 살린 타격이 장기이며, 특히 그의 왼발 하이킥은 상대 입장에서는 시야의 사각에서 갑자기 빠르게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격필살의 파괴력을 가진다. 이 하이킥 덕분에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크로캅은 그의 사춘기 때인 1991년에 시작된 크로아티아 내전을 몸소 겪으면서 한때 잠시 운동을 중단하기도 했다고 한다. 드라마 에서 등장인물 닉 스톡스 역을 맡는 배우 조지 이즈처럼 얼굴의 너비와 목의 너비가 똑같다. 머리와 목이 두툼한 각목처럼 한덩어리로 쭉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격투기 선수치고는 ‘세수 대야’도 잘 생긴 편이어서 그런지 크로아티아에서는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본 팬을 의식해서인지 정치적으로는 고이즈미 편을 들고 있는데 나로서는 이 대목이 못마땅하다.

‘효도르’는 ‘표도르’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러시아 알파벳, 그러니까 키릴문자로는 Фёдор Емельяненко라고 표기하니까 굳이 우리말로 옯기자면 ‘표도르 예몔례녠코’가 더 러시아 발음에 가까울 듯 싶다. 어쨌든 둥글둥글한 몸집의 효도르는 동네 아저씨같은 느낌을 준다. 효도르의 물렁살과 뱃살은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의 그것에 가깝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효도르처럼 지방질이 많되 훈련으로 단련된 몸은 지구력이나 유연성에서 더 뛰어나다고 한다.

효도르는 1976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서 78년에 부모님을 따라 러시아로 이주했다고 한다. 효도르는 삼보와 유도는 물론이고 레슬링과 킥복싱도 익혔다고 한다. ‘프라이드’에서 활약하기 전에는 또다른 격투기 게임 ‘링스’에서 헤비급과 무제한급의 챔피언을 지냈다. 효도르가 2003년 경기에서 괴력의 랜들맨에 의해서 번쩍 들렸다가 머리부터 거꾸로 떨어질 때에 이를 보고 있던 나는 순간 아찔해졌다. 저러다가 목이 부러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바로 그 찰나에 효도르는 극히 유연하게 어깨와 등으로 매트 바닥을 받아내는 순발력있는 낙법을 선보였다. 그렇게 충격을 완화하고 나서는 곧바로 반격해서는 상대방을 ‘암록’으로 ‘탭 아웃’시켜버렸는데 이 장면은 어떠한 액션 영화나 무협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경이적이었다.

효도르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하면 무표정한 얼굴이다. 만화 주인공 ‘구영탄’을 연상시키는 약간 풀린 듯이 보이는 눈동자를 하고 있는 반면에 입술을 굳게 다물고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게 그의 평소 모습이다. 그런 그가 상대방 위에 올라타서 냉정하고도 힘차게 ‘파운딩’을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졸라 아프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번 경기에서 중반 이후에 크로캅의 체력이 급속하게 떨어진 것은 이런 점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효도르의 ‘얼음 파운딩’은 그 만큼 위력적이었던 것이다. 영어 단어 ‘파운드’란 명사로는 무게를 다는 단위를 뜻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여러번 때리는 것을 말한다. 형태는 같지만 어원이 서로 다르다. 이번 경기를 보니 ‘얼음’이란 별명이 붙게 된 것은 국적이 러시아인 효도르가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어떤 상황에서든지 냉정한 스타일로 경기를 운영하기 때문이란 게 아주 쉽게 이해되었다. 효도르는 그라운드 기술도 뛰어나지만 그 특유의 러시안 훅을 포함해서 타격 기술도 아주 뛰어나다. 그러니 크로캅이 효도르를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매스컴에서는 종종 이종격투기가 극도로 잔인하고 위험하다고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달 전에 한국에서 아마추어 선수가 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선수나 주최측의 준비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 이종격투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 위험하지만 패러글라이딩이나 스키를 타는 것보다 더 위험하지는 않다고들 한다.

그래도 김태촌 ‘칼침’엔 못당할걸

이종격투기는 막싸움이나 개싸움을 닮았지만 엄연히 룰이 있는 스포츠 게임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김두한과 효도르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 하는 등의 물음이 올라와 있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질문은 최배달과 이소룡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하는 물음과 마찬가지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런 물음은 1960년대 소년잡지의 특집 기사, 그러니까 사자와 호랑이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 하는 것 따위와 비슷하다.

물론, 이종격투기는 바로 이런 소박한 궁금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창안된 장르이기는 하다. 1970년대 중반에 벌어진 프로복싱 헤비급 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일본 레슬링선수 출신 안토니오 이노키의 대결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종격투기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몸싸움의 이미지를 보여주되, 거대한 흥행 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방송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세계에 중계된다는 점에서 이종격투기는 ‘제리 스프링거 쇼’나 NBA(엔비에이·미국농구협회) 농구경기와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초점이 되는 몸싸움이 그 일부분이냐 전부냐 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로마 시대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글래디에이터(검투사)들의 싸움 구경 이후로 전문가들이 벌이는 싸움을 구경하는 일은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즐겨온 여러가지 놀이 중의 하나이다. 몸싸움의 이미지라는 점에서는 ‘프라이드’의 효도르와 <킬 빌>의 우마 서먼이 붙는 경우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이재현/작가
김일과 효도르가 붙으면 김일이 진다. ‘K-1’에서든 ‘프라이드’에서든 박치기, 즉 ‘헤드 버팅’은 반칙이기 때문이다. 효도르와 김태촌이 붙으면 당연히 김태촌이 이긴다. 제 아무리 ‘얼음 파운딩’이라고 하지만 칼침을 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무문>의 이소룡이 일본 제국주의의 총칼을 당해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사족 같지만 굳이 한마디 덧붙인다면, 피가 낭자한 어떠한 이종격투기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시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 그리고 지금 뉴 올리언스에서 벌이고 있는 인재(人災)보다는 훨씬 덜 잔인하고 훨씬 더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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