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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템플 그랜딘 지음. 홍한별 옮김. 양철북 펴냄. 1만800원 |
자폐인이 쓴 자폐의 세계…소리지르고 몸 흔드는 건 뒤죽박죽 혼돈의 세상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 움직이는 눈동자는 못견뎌 눈을 맞추지도 못한다 자폐인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일 뿐이다
입을 앙다문 채 자기 생각에 갇혀 눈조차 맞추지 않는 아이. 끊임없이 무엇인가 두드려대거나 들은 말을 메아리처럼 되풀이하는 아이. 자라서 사람 구실은 할까. 낳아 길렀으되 젖도 먹이지 않은 것처럼 앵돌아 앉은 자폐아. 꿈꾸는 듯한 저 눈빛 너머 무슨 생각을 할까. 그의 눈에 세상은 어떻게 비칠까. 과연 비치기는 하는 걸까.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양철북 펴냄)는 자폐인이 쓴 자폐에 관한 책이다. 지은이 템플 그랜딘은 자폐를 극복하고 일리노이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가축시설 설계자로, 콜로라도 주립대 조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기적이라 부를 만하지 않은가. 인간승리를 말함이 아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은, 말할 수 없었던 자폐인의 내면세계를 밝힌 까닭이다. 자폐 극복 동물학 박사 된 지은이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언어는 나한테 외국어와 같다. 말을 듣거나 글을 읽으면 나는 사운드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총천연색 영화로 번역해서 머릿속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돌리듯 돌린다.” 그의 상상력은 영화 <쥬라기 공원>의 공룡을 만들어낸 컴퓨터그래픽 프로그램과 같다. 그래서 도면에서가 아닌 설비를 하고나서야 결함을 발견하는 기술자들을 이해 못한다. 지은이의 말이 다양한 자폐인 세계의 전부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는 세살 적 다른 의사소통 방법이 없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생일파티 때 사람들이 나팔을 불어대거나 해서 너무 시끄러워 짜증냈던 기억도 선명하다. 소음이 너무 심해졌을 때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을 흔들고 뱅뱅 돌기도 했다. 몸을 흔들면 기분이 가라앉았고, 맴돌다 멈춰 방이 빙빙 돌아가는 것을 기분 좋아했다.혼자서 바닷가에 앉아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무아지경에 빠졌다. 모래알 하나하나의 모양과 윤곽을 관찰하다보면 주변 풍경이나 소리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었다. 자폐인 세계는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다. 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의 저기능 자폐인은 완전히 뒤죽박죽인 감각 세계에서 산다. 만화경으로 세상을 보면서 전파방해 속에서 라디오를 듣는 것과 비슷하다. 거기다 공포와 두려움을 잘 느끼는 신경계를 가져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패닉상태가 된다. 그는 여섯살 때 담요를 둘둘 말고 소파 쿠션 밑에 들어가곤 했는데, 좁은 곳에 몸이 끼이게 하면 기분이 좋았다. 더 자라서 패닉이 찾아왔을 때 소를 집어넣어 예방주사를 놓는 기구인 압착슈트에 들어가 자신의 몸을 눌러줌으로써 안정을 되찾았다. 이것은 나중에 인간용 압착기를 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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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의 감각은 섬세하고 조절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강도가 세거나 종류가 둘 이상이면 뒤죽박죽 섞여 쉽게 짜증을 내고 때로는 아예 문을 차단해버린다.
사진은 사진작가 추연공씨의 <자폐아>.
사진은 자폐아를 다룬 영화 <말아톤>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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