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마뉘엘 수녀 지음. 박종구 옮김. 샘터 펴냄. 8500원 |
인간의 연약함 깨닫고 빈민들 속에서 해방 찾은 아흔여섯살 노수녀의 인생론 “사랑의 행복의 길을 연다”
평생 남을 위해 살아온 아흔여섯 살 수녀가 썼기에 망정이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샘터)라는 거창한 제목의 이 책은 거부감을 줄 법하다. 지은이는 에마뉘엘 수녀. 스무 살에 수녀가 되어 터키, 튀니지, 이집트 등에서 40여년 동안 어린이를 가르쳤다. 예순두 살에 은퇴한 뒤 카이로의 빈민가에 들어가 넝마주이들과 23년간 함께 살며 가난과 싸운 그는 지금도 현역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어쨌든. 지은이는 전권을 통하여 아주 커다란 삼각형을 그리고 있다. 세 꼭지점에 지은이 자신과 파스칼(또는 팡세)과 ‘그분’이 있는 욕망의 삼각형. 파스칼은 천상의 ‘그분’에게 이르기 위한 지상의 매개자인 셈. 지은이와 파스칼과의 첫 만남은 열네 살 때 문학공부를 하면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구절에서 지겨웠던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이 볼품없는 작은 갈대인 내가 광대한 우주와 비교되다니….” 우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예감으로 소녀는 ‘잘 생각하는 길’에 들어선다. “세상에 있는 것은 육체의 탐욕 아니면 눈의 탐욕, 아니면 생명의 거드름이다. 곧 감각적 욕망, 지식욕, 지배욕이다. 이 불의 강은 물로 적셔 주기는 커녕 불행한 저주의 땅을 뜨겁게 태워버린다.” 그는 ‘불의 강’을 건널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젊은이는 피가 뜨거운 까닭.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에 린드버그 모자를 쓰고 거리를 누볐고 브뤼셀 거리를 걸으면서 남자를 낚으려고도 했다. 그는 회고한다. 그분이 어머니의 묵주 기도를 들으셨을 거라고. 인류역사, 별들, 고고학, 쐐기문자, 상형문자, 과학과 예술, 세속과 종교, 신화와 문학작품 등등. 그의 알고픈 욕망은 끝이 없었다. 대학졸업장도 땄다. 하지만 지식쌓기의 욕망이 재산과 쾌락을 쌓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또 이스탄불 대학에서 이슬람과 유대 세계를 만나면서 ‘어느 것이 진리인가’를 고민하고 토마스 아퀴나스에 매료되기도 하나 추론하는 이성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게 된다. 훗날 아이들을 가르치고 넝마주이들과 함께 생활한 것은 어떤가. 많은 일을 만들어내면서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 것은 아닌가, 그런 활동이 혹시 권력욕을 채우는 장은 아니었을까. 그의 반성이다. 그가 이토록 파스칼적인 인간이 된 것은 61년 소르본 대학에서 파스칼 강좌를 듣고 그를 자신의 등대로 삼으면서부터. “하느님에 관한 형이상학적 증명은 인간들의 추론과는 하도 동떨어져 있어… 증명은 별로 감명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자연적인 이유들에 의해, 하느님의 존재, 삼위일체 혹은 영혼의 불멸, 그밖의 이러한 유의 어떤 것도 증명하려 들지 않겠다.” 이 구절에서 그는 ‘귀먹은 양 멍해졌다.’ 하느님의 존재를 발견하기 위해서 애써온 그를 파스칼은 조소하고 있지 않겠는가. ‘그분’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지 이성이 아님을 말하는 것. “‘하느님은 존재한다.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이성은 이것에 대해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다. 우리를 분열시키는 무한한 혼돈이 있을 뿐이다. 내기를 해야 한다. …당신은 배에 올랐다.” 예순두 살이 되던 해, 파스칼은 그로 하여금 커다란 도박을 하게 한다. 자신이 소유한 책들을 나누어 주었고 그의 지식욕의 흔적인 공책들을 불태워 버렸다. 춤추는 불꽃은 해방이었다. 해방 뒤에 찾아온 것은 헐벗은 이들과 함께 나눈 사랑의 신비. 사랑은 움직이는 것. 너 또는 나한테서가 아니라 우리 사이에서 말미암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자의 다름을 듣고 배우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아흔여섯 살 수녀가 이르른 곳은 결국 ‘사랑’. 그것만이 우리가 비참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 기쁨에 머물수 있게 한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