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5 20:05
수정 : 2005.12.02 01:44
정치 스타일이 투박하다고?
허세를 품위로 착각하는 환자들
노통 때리기는 토네이도 수준
기득권 박탈 언론도 ‘조지기’ 동참
언론은 정치투쟁 접고 새 길 찾아야
세설
요즘 신문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글이 참 많다. 물론 대부분이 비판적이다. 그런데 그 비판의 행태가 참 기묘하다. 대부분이 말이나 태도 등 개인적인 스타일에 관한 거다. 필자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한 연구에서 노 대통령 시기의 기사를 분석해보니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됐다. 비판의 요지가 ‘정치적 투박함’에 해당하는 기사가 이전 정권에서는 거의 제로인데 노 정권은 20%에 달했다. 이런 비판의 행태는 까닭 없이 싫은 사람을 대할 때 흔히 나타나는 태도다. 정말 싫은데 딱히 씹을 게 없으니 별 사소한 일들이 다 크게 보이는 거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 상태를 ‘히스테리’라고 진단한다. 확실히 ‘노통 때리기’에는 집단히스테리의 징후가 농후하다. 얼마 전에 만난 한 기자는 “요즘 노무현 조지는 글 안 쓰면 바보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은 ‘무조건 싫다’와 “원론은 맞는데 각론이 싫다” 두 유형이 있다. 전자는 보수언론이 집권 초기부터 고수하던 전략이다. 후자는 개혁세력 내부나 지식인들이 노 대통령을 대하는 흔한 태도인데, 여기서도 말투나 스타일에 대한 지적이 많다. 나는 이 둘 다 ‘하고 싶은 말 따로 뱉어내는 말 따로’ 같다. 이들의 속내는 전자가 “내 밥그릇 축낸 당신이 정말 싫다” 라면, 후자는 “밥 숟가락 놓고 개혁에 동참하라는 당신이 불편하다”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노통 때리기’는 억압된 욕망이 전치된 전환 히스테리가 아닌가! 그게 집단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은 이런 게 아닐까? 강력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가진 “무조건 싫다‘가 먼저 바람을 잡는다. ’상고 출신이다‘, ’말이 많다‘ ’경솔하다‘ 닥치는 대로 조져대니 노 대통령도 펀치 드렁크가 생겨 과민해진다. 이쯤에서 정세를 관망 중이던 ’각론이 싫다”가 ‘가장 안전빵=미적 취향 비판’으로 가닥을 잡고 편승한다. 졸고 있던 관객들이 얼떨결에 박수를 치며 마침내 토네이도가 발생한다.
어쨌거나 대통령 비판이 밥줄 걸던 거사였음이 얼마 전인데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 과정에 지배연합의 세력 교체, 언론인의 지위 변화, 개혁세력 내부의 기회주의, 국민들의 권위주의 의존증 등이 동시에 작용했다고 본다. 산업화 시대에 한국 사회의 지배블록은 대자본, 정치인, 고위관료, 보수적 학자, 언론 등으로 구성됐다. 이 구도에서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급속히 강화됐다. 현재까지도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는 공고하고, 그 위에서 지배블록을 형성하던 지배연합 내부의 분열이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까지 가속화 됐다. 그 결과 보수적 중산층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구지배연합과 저소득층 및 개혁적 시민사회에 뿌리박은 진보세력이 팽팽한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새로운 진보세력의 집권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일시적인 지배연합의 균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후자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지배연합의 세력 구성이 변해도 성격 자체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포섭되리라는데 근거한다. “무조건 싫다”는 보수언론의 배짱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결국은 ‘일회용’일 거라는 보수적 낙관주의가 뿌리다. ‘각론이 싫다’는 사람의 불안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인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와 내동댕이칠 수 없는 개혁 코드 사이에서 말은 개혁, 삶은 신자유주의를 좇는 기회주의자의 불안이 그 뿌리다.
‘노통 때리기’를 추동하는 또 다른 요인 하나는 기득권을 누리던 언론의 불안이다. 과거 지배연합의 한 축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누렸던 이들의 지위는 노무현 정권 들어 급격하게 추락했다. 여기에 매체환경 변화로 산업적 위기가 겹쳤고 공식브리핑제의 도입으로 취재활동까지 축소됐다. 그리하여 한 청와대 출입기자는 전하기를 “ 취재과정에서 느끼는 ‘박대’가 정권의 이미지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고 그게 기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전한다. 이건 과거 권-언 유착의 혜택이 급진적으로 단절된데 대한 일종의 금단증상이고, 직접 표출하기 어려운 그 불쾌감이 ‘노통 때리기’에 영향을 준다는 거다. 그런데 여기에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누구인가? 권력이라고는 군사정권과 그 아류밖에 밖에 경험한 게 없어서 제왕적 대통령의 허우대와 허세를 품위라고 생각하는 권위주의 의존증 환자들 아닌가. 이들은 후진 국민일수록 위대한 지도자를 동경한다는 사실, ‘노통 때리기’가 30년 묵은 권위주의의 종양이 터지면서 흘러나오는 고름이라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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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일/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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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쯤 한 신문의 논설위원이 ‘그대 계속해서 가라’는 제목의 연애편지 한 장을 개혁세력을 향해 날렸다. 수신인은 노 대통령도 보수언론도 아니다. 이 칼럼은 정부의 미진한 개혁과 보수언론의 트집 잡기에 대한 실망, 언론인으로서의 당혹감, 여전히 개혁을 열망하는 누군가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나는 이 글이 진보-보수 진영의 대리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던 언론의 고민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현재의 정파적 구도에 몸을 기대지 않은 채 미래에 대한 약속 없이 현재를 솔직하게 말하는 고해! 나는 이런 성찰이 정치투쟁에 나섰던 언론이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시작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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