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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5 20:56 수정 : 2005.09.16 14:01

최성각/소설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지구 온난화 무서운 결과 일상처럼 느끼곤 있지만 내놓는 대책이란 방재시설 확보뿐 교토의정서 외면 등 지구환경에 무책임 일관 미국은 정신 차릴까

녹색 에세이/달려라 냇물아

태풍 ‘나비’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가던 얼마 전 저녁뉴스는 참으로 이채로웠다. 그날 저녁 뉴스에 정치인들이 한 명도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 부산, 울릉도를 할퀴고 있는 태풍소식으로 화면 속에는 물이 콸콸 넘치고 파도라기보다 해일이라 말해야 옳을 ‘태풍의 바다’가 넘실거렸다. 재해를 전하는 현장 아나운서는 세찬 바람으로 균형을 잡지 못했고, 카메라 렌즈를 때리는 빗방울은 방안의 화면까지 뿌옇게 만들곤 했다. 태풍의 한가운데에 있는 일본 소식에 이어 곧바로 화면은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로 이동했다. 처참한 그쪽 뉴스가 끝나자 곧 지방뉴스로 이어져 한강상류의 녹조 이야기로 번졌다. 정치인이 한번도 출현하지 않는 뉴스를 살아생전에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기어이 ‘자연의 뉴스’로만 채워진 긴박한 뉴스를 접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기뻤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럴 리가 있을까. 다만,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가들의 뉴스에 무방비로 폭격을 받곤 하던 종래의 편성이 정말 만고불변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그날은 품지 않아도 되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남의 나라 재해 이야기가 어떤 이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겠지만, ‘거대한 파티의 도시, 뉴올리언스’의 끔찍한 자연참사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9·11과는 다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 비합리적인 세계에 자연이 무슨 치밀한 숨은 의도를 지니고 있겠는가만, 뉴올리언스의 재해는 적잖은 상징성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거느리고 있는 듯하다. 밤새도록 음악이 멈추지 않던 그곳은 사상자만 1만여명을 단숨에 넘었고,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주검과 이재민을 낳을지 모른다.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인구이동라는 소리가 들리고 있고, 사람살이는 정상치의 4만5천배가 넘는 세균과 화학물질을 담은 독극물에 잠겨 출렁거리고, 그 위로 셀 수 없는 주검들이 떠다니고 있다. 인명보다 남부의 석유기지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며 늑장 대응을 한 부시는 궁색한 얼굴로 소매를 걷어붙임으로써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려고 고심중이고, 가증스러운 보수 언론은 같은 식품점을 털어도 백인이 털면 ‘정당한 식품확보’이고, 흑인이 털면 ‘저주스러운 식품약탈’로 표현했다. 그렇잖아도 죽은 이들이나 갈 데가 없다고 절규하는 이들이나 더러 약탈하는 패들이 왜 맨 흑인뿐인가 싶어 참사가 일어나던 시점부터 ‘남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가를 짐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온 세계가 그렇게 느끼자, 다급해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인종차별 없었다. 미국인이 재해를 당하고 있을 뿐이다”고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위로의 동참을 할까 고심하던 우리 정부는 세계에서 네 번째 규모의 물자와 인력을 재해지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넘치다 싶을 ‘화끈한 지원’에 그렇다고 불만을 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악의 축’이라 규정된 뒤 극도의 위협과 간섭을 받고 있는 북녘에서도 곧바로 위로의 전보를 친 것으로 알고 있다.

 거칠게 말해서, 허리케인으로 한 아름다운 도시의 제방 하나가 무너졌을 뿐인데, 미증유의 초강대국 미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기운 속에서 대통령은 관료주의를 비난하고, 흑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100조원의 예상 피해액은 미국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타격을 입힐 게 명백하다. 이런 가운데 참상의 피해자가 여지없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미국이 주도해 온 신자유주의의 예고된 결과라는 분석과 경고도 들린다. 9월중에 또 다른 대형 허리케인이 엄습할 것이라는 공포가 미국 전역을 공황심리에 빠뜨리고 있는 가운데, 극동의 우리는 가을 태풍 하나를 상당한 피해와 함께 간신히 넘겼다.

인간의 ‘위대한 산업문명’ 자체를 조롱하고 있는 듯한 끔찍한 자연재해가 왜 이토록 잦을까. 모두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반도의 경우에는 동해의 수온이 높아지면서 난류성 어종이라 ‘없던 돔’이 동해에서 잡히고 명태가 북상하더니만, 태풍의 규모를 40년대의 두 배로 키우기 시작했다. 북극 사람들은 산업사회의 생활방식으로 인한 먹이사슬의 농축으로 인해 PCB(폴리염화비페닐)로 오염되었고, 물에 잠기는 베니스를 살리기 위해 이탈리아는 만리장성을 방불할 콘크리트 시설물을 바다에 쌓고 있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고 있는 것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녹는 눈을 방지하기 위해 스위스 사람들이 거대한 포()를 빙원에 열심히 씌우고 있지만 베니스의 방조제처럼 그 결과는 절망적이라고 봐야 옳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공화국은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를 포기하고 ‘환경난민’ 신청을 한 지 오래며, 몰디브의 평균고도는 2m도 안 남았다. 수십 년 안에 도쿄에 상상을 초월할 대지진이 도래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일본의 잦은 지진소식이 나올 때마다 양념처럼 따라붙는 이야기다. 그뿐인가. 양쯔강의 샨샤댐이 완공된 이후 그 무지막지한 중화주의가 세계기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모른다. 세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가차없는 자연의 역습은 인간이 그어놓은 모든 경계를 묵살한 채 닥치고 있다.


모두들 전과 달리 이제는 지구온난화의 무서운 결과를 일상처럼 느끼곤 있지만, 내놓는 대책은 여전히 공허하기 짝이 없다. 태풍 나비를 보도하는 언론과 전문가들도 겨우 끝자락에 한다는 말이 ‘철저한 방재시설 확보와 빈틈없는 대비’라는 애매한 말이 전부다. 환경운동을 공산주의 운동만큼이나 혐오하는 미국 상원의 우파정치인들은 이번 ‘뉴올리언스’를 겪으며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교토의정서 외면에서 보듯 지구환경에는 무책임으로 일관하면서도 자국의 환경보호에는 그토록 이기적이던 미국이 과연 이번 참사로 정신을 차릴까.

아니, 정말 먼 데 이야기를 삼가자. 내 나라는 오늘도 ‘2만달러 시대’가 더 급하다. 인간은 진화의 정점도 아니고, 이 행성의 주인은 더욱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의 가장 큰 재앙이 바로 인간일지도 모른다. 서둘러 ‘다른 삶’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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