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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가톨릭대 교수·과학사회학 leeyoung@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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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만난 사회
최근 미국 남부 해안지대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엄청난 재산피해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을 발생시킨 사상 최악의 자연재앙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이 허리케인의 습격을 받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세계인들에게 자연재앙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분명 자연재앙이었다. 그런데 이번 허리케인으로 인해 발생한 엄청난 피해를 놓고 단지 불가피한 자연재앙 때문이었다고만 말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다. 그렇다면 무엇인 문제였을까. 나는 여기서 요즘 미국 언론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소리 높여 제기하는 정부의 늑장대응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늑장대응보다 더 주목해 보아야 할 문제는, 허리케인의 발생 자체는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의 강도와 파급력은 개발을 맹목적으로 추구해온 인간사회에 의해 크게 증폭되었다는 점이다. 먼저 좀더 근원적인 차원에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허리케인의 강도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1970년대 이후 허리케인의 강도는 3배가, 타이푼(태풍)의 강도는 2배가 증대했다고 한다. 바닷물과 공기가 따뜻해지면서 증가한 수증기 양이 폭풍과 강우량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지하듯이 지구온난화는 개발과 소비에 집착해온 인간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또 하나는 인간사회의 무분별한 개발정책이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앙을 막아낼 ‘자연방패’들을 제거해 버렸다는 점이다. 이번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가 집중된 남부 뉴올리언스 지역의 경우에도 도시의 팽창에 따라 해안지대가 무분별하게 개발되면서 허리케인의 파급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지연방패들인 모래섬과 수목들 그리고 습지들이 사라짐으로써 피해가 가중되었다고 한다. 지난 연말 지진해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남아시아 나라들 역시 해안지역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지진해일의 영향을 최소화시켜줄 수 있는 해초들을 사라지게 한 것이 결과적으로 가공할 재앙을 불러일으켰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근대 과학기술은 기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정복과 통제에 기반한 성장과 개발의 논리를 강화시켜 왔다. 그러나 이번 허리케인 참사는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자연과 슬기롭게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사회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임을 암시해주고 있다.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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