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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이태진 지음. 태학사 펴냄. 1만4000원 |
도쿄대생들에게 충격 준 이태진 서울대교수 특별강연 조선책임론·식민지근대화론 등 일제침략사 막연한 ‘상식’ 결정적 증거 대며 뒤집어 고종·명성황후 부정적 이미지는 일제의 간교한 날조 ‘합방’ 과정 명백한 탈법도 낱낱이 까발려
1592년부터 7년간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대가 조선을 유린한 임진왜란은 한반도 역사를 기름지게 만들었을까, 피폐의 나락으로 몰고갔을까? 인도가 영국 식민지가 되고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가 된 것은 인도와 베트남이 형편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국과 베트남이 식민통치를 했기 때문에 그 나라들이 형편없어진 걸까? 미국의 한반도 분할과 남한 점령통치는 한반도와 한민족 전체 역사에 행일까 불행일까? 어떤 사건이든 양면이 있기 마련이어서, 임진왜란 때 조선에 일부 새 문물이 들어오고 기존사회에 새로운 자극을 준 측면이 어찌 없을까마는, 셀 수 없는 인명을 살상하고 붙잡아가고 재화를 약탈하고 불지르고 파괴함으로써 물질적·정신적으로 조선사회의 근간을 뒤흔들어 근대로 가는 도정마저 뒤틀어버린 대신 일본에게는 발전의 도약대가 됐던 저 임진년의 처참한 야만행위를 두고 ‘그 덕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게 됐다’고 말하는 한국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국인도 일제침략사 진실 몰라 일제가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의 필리핀 독점지배를 인정하고 대신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보장받은 뒤 그해 11월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을 강제하고 12월에 통감부까지 설치함으로써 사실상 식민통치를 시작했을 때 그 일을 주도한 세력이 임진왜란의 주역 도요토미 영전에 “당신이 못 이룬 뜻, 마침내 우리가 해냈습니다”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게르만족이 로마를 무너뜨리고 몽골족과 여진족이 중국대륙과 한반도를 휩쓴 뒤 원, 청나라를 세운 것은 게르만이나 몽골, 여진이 로마나 중국·조선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도요토미와 메이지 시대의 일본이 조선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기 때문에 조선을 유린한 것인가? 이 땅에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특히 메이지 시대 일본의 조선 침탈은 당대뿐만 아니라 고대 이래로 자생력없는 조선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됐으며, 일제의 식민통치는 한반도 역사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는 따위의 식민지근대화론에 경도된 사람들이 적지않다. 심지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좀더 객관적이며, 편협한 민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한 차원 높은 자세라고 과시하는 듯한 풍조마저 요즘 유행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이태진 서울대 교수의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메이지 일본의 한국침략사>(태학사 펴냄)를 읽으면 그게 얼마나 식민사관에 찌든, 터무니없는 착시인지 알게 된다. 저자는 그냥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할 수 없는 근거들을 착실하게 들이댄다. 일본은 조선 근대화를 가로막은 장본인이었다. 이 책은 일본 도쿄대 철학센터 초청(초청자는 일제의 전범행위를 반성적으로 고찰해온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으로 2004년 6월24일부터 7월15일까지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총합문화학과 대학원생 및 교수들을 대상으로 행한 총 6회의 강의와 일반에 공개한 특별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도쿄대에서 한국 교수에 의해 이뤄진 최초의 한국사 학점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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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위력을 앞세워 조작한 1907년 7월20일 순종황제 양위식. 일본의 퇴위 강요에 반발한 고종이 황태자와 함께 불참하자 통감부는 한 내관에게 양위 조칙을 봉독케 하고 황태자 대역을 한 환관에게 이를 바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발행된 <트리뷰나 일루스트라타> 1907년 8월4일치 표지그림으로, ‘한국의 새 황제 이척의 즉위식’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림에서 옥좌에 앉아 있는 사람은 녹색 복색 차림의 환관이 분명하다. 왼쪽에 일제 관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국에선 처음 공개된다.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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