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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2 18:59 수정 : 2005.09.23 14:22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안중근의 ‘장부가’에서 이태호의 ‘하얼빈…’까지 고증 속엔 문학적인 것도 포함될까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

광복 60주년을 맞아 여러 뜻깊은 일들이 펼쳐졌소.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 운동도 그 중의 하나. 어떤 운동도 열정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데, 뜨겁고 순수함이 열정의 속성인 까닭이오. 냉철하고 엄밀한 학적 고증이 요망됨은 이 때문. 고증에 관해 조금 생각해보면 어떠할까요. 곧 고증 속엔 문학적인 것도 포함될 수 있을까. 요컨대 문학 쪽에서도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까.

“이등공(伊藤公)이 세 발 탄환에 중(中)하여…”(<대한매일신보>, 1909. 10. 26)에서 비롯 “범인은 응칠 안인데…”(동 10. 30)를 거쳐 “이등공을 저격한 한국인은 취조한 결과로 안응칠(安應七)은 위명이고 본명은 안중근(安重根)인데…”(동 11. 9)에 이르기까지 신분 확인에 무려 보름 가까이 걸렸습니다. 이에 비해 공판 기록의 보도는 의외에도 매우 상세합니다. 공판 제3일째 보도(1910. 2. 9)엔 증거물로 제시된 시가 두 수가 실려 있습니다. “丈夫處世兮 其志大矣…”(사나이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로 된 안의사의 한시가 그 하나. “만났도다 만났도다/원수 너를 만났도다/너를 한 번 만나고자/일평생에 원했지만…”으로 시작되는 우덕순(禹德淳)의 시가가 다른 하나. 이들 한시와 가사란 어떤 문학적 현상으로 규정해야 적절할까. 또 있소.

안의사의 귀천(1910. 3. 26)에 당하여 그 유언이 보도되어 있소. 대한독립 회복 이외에는 아무런 소회가 없다는 것, 두 아우에겐 자친 봉양을 부탁했다는 것, 대한독립 회복 전에는 시체를 고국으로 반장(返葬)하지 말고 하얼빈 공원 근처에 매장하여 세계 망국의 지침이 되게 하라는 것. 일본은 이에 불응하고 뤼순 공동묘지에 강제 매장했다는 것. 안의사의 귀천에 즈음하여 사신으로 한국에 온 바 있고, 훗날 대총통이 된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조사 <輓安重根義士>가 실려 있소. 身在三韓名萬國 生無百歲死千秋(몸은 조선에 있으나 이름 만국에 났고 생명은 백세 없지만 죽음으로 영원하도다).

저러한 한시나 가사나 조사란 그 각각의 범주와 소임이 주어져 있겠으나 굳이 이를 아우르는 단위가 있다면 혹시 ‘문학적인 것’이라 할 수 없을까요. 이런 물음은 다음 두 가지 사례에서 좀더 확실해지겠지요.

그 하나는 혁명 연극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1928년 1월 무송에서 창작, 공연한 작품으로 되어 있소.(박종원·류만, <조선문학개관>) 열혈청년 안중근의 이등 포살을 중심으로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전후한 배경과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이 연극(희곡)은 그 범주상 문학적 현상에 해당될 터. 다른 하나는 이태호(李泰浩) 작 <하얼빈 역두의 총성>(삼중당서점, 1931. 5. 1)입니다. 이 작품을 내가 대한 것은 1991년 2월이었소. 12장(場)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대체 무엇이며 작가 이태호는 누구인가.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이것이 책으로 간행되었다는 점. 어찌 이런 책이 검열에 통과될 수 있었을까. 베스트셀러가 되자 당국이 금서로 규정했지만 적어도 검열에 무사통과되었음만은 사실이 아니었겠는가. 재판기록을 정확히 검토한 바탕 위에서 희곡이 갖추어야 할 갈등구조를 빈틈없이 처리한 이 희곡은 대체 무엇인가. 갈등구조라 했거니와 (1) 자기와 동격인 이등 죽이기란 자기 자신 죽이기, 곧 자살행위와 등가라는 것 (2) 거울에 모습 비추어보기 (3) 이등을 3년간 관찰 연구한 결과 “남같이 생각되지 않아. 요새 와서 그가 난지 내가 근지…”(pp. 139~140)에서 보듯 심리적 갈등이 주조저음을 이루고 있지 않겠는가.

직감적으로 내가 느낀 것은 필시 일본의 중요 잡지에 발표된 일본 문사의 작품이라는 것이었소. 일본 본국의 검열에 통과한 작품이 아니고서는 어찌 일개 출판사에서 책으로 낼 수 있었겠는가. 마침내 그 이유가 판명되었소. 일본 작가 다니 지요지(谷讓次, 1900~1935)의 희곡 <안중근>(<중앙공론>, 1931. 4)이 그것. 조금 들뜬 마음으로 이를 소개한 것이 졸고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1991. 3)이었소. 그것이 작품급에 든다고 보았기 때문. 문학적 기여로서의 고증이란 이러한 일정한 질적 과제에 관련될 경우를 가리킴이니까.


김연수 씨의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2004)는 어떠할까요. 주인공 성재, 성수 형제를 각각 안중근, 우덕순에 견준 인물들의 심리적 통찰이 생생히 하얼빈을 무대로 펼쳐져 있소. 이런 작품이 문학적 고증에 든다고 했을 땐 그것의 도달점을 따짐에 있지 않소. 문학의 기여함이란 오히려 도달점을 향해 노력함에 있기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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