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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9 17:08 수정 : 2006.02.22 19:47

도솔출판사 ‘시골에 사는 즐거움’

아깝다 이책

도시에 살면서 바쁘고 복잡한 세상살이에 지칠 때 누구나 한번쯤은 시골로 내려가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맑은 공기, 넉넉한 인심, 저녁 무렵 집집마다 피는 연기를 떠올리면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저자 유안나 씨의 가족은 자립하는 삶, 건강한 밥상을 자신의 손으로 차려보겠다고 충북 음성으로 3년 전 내려와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주고 고추 농사를 짓고 있다. 갑작스런 남편의 귀농 결정으로 이혼까지 생각한 안나 씨였다. 어릴 적 농부인 홀어머니 밑에서 6남매의 막내로 자라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자랐는지를 보았기에 더욱 그랬지만 남편의 결심은 확고했다. 어린 아들 둘 역시 아버지와 떨어져 살기는 싫다고, 그렇게 모두 시골로 내려왔다.

5천만원이 넘는 연봉을 포기하고 연 수입 500만원의 고추 농사꾼이 된 그들 가족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이 나오고 5월 초의 어느 날, 음성에서 사과 꽃 복숭아 꽃 구경 오라는 엽서가 날아왔다. 출판기념회를 겸해서 시골에 사는 즐거움으로 도시 사람들을 샘나게 해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러했다. “귀농 3년 만에 아내가 책을 냈습니다. 사실 3년 동안 아내는 시골 생활이 싫다고 보따리 싸서 집을 나가길 두어 차례. 봄 여름 가을 동안은 농사일에 바빠 정신없이 일하고 곯아떨어지지만 겨울에 좀 한가하다 싶으면 농사일, 특히 손이 많이 가고 정신없이 더울 때 일을 많이 하는 고추 농사일은 죽어도 짓지 않겠다며 다투었습니다. 한없이 찾아오는 손님 치다꺼리 안 하겠다고 서울로 막차 타고 달아나기도 하고 어떤 땐 흐르는 땀과 범벅이 되어 밭에 앉아 철철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가 이제 시골에 사는 것이 즐겁다고 동네방네 소문냈으니 올 겨울부터는 안심하고 두 다리 뻗고 자게 되었다고, 남편은 책을 낸 안나 씨보다 더 행복해했다.

3년차 농부가 과연 얼마나 농사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마는, 이 책에는 욕심을 버리고 나서 얻은 삶의 즐거움들이 소박하게 눈물 나게 정겹게 펼쳐져 있다. 매년 자신의 보살핌으로 커가는 작물들을 보며 배우는 감동이 제일이라는 그. 자신이 키운 것을 반찬으로 내놓는 것이 기쁨이 되어가고 있다는 그. 도시 여자였지만 이제 시골 여자로서 농부의 삶을 당당히 가꾸어 나가는 안나 씨의 삶은 그래서 더욱 눈부시다. 오로지 버리고서야 얻을 수 있는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 바로 시골에 사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골에서 사는 게 괴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라고 한, 이상을 현실화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귀농부부의 행복한 이야기를 여전히 반신반의한다. 부끄럽지만 출판사 식구들도 그랬다. 고추 모종 심을 때 꼭 오라고 했지만 아무도 가지 못했다. 불편하지 않으면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은 게 요즘 우리들이 원하는 웰빙한 삶이라면, 돈도 버리고 편리함도 버리고 유행도 버리고 교육의 우선순위도 버리고 오로지 비지땀을 흘림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농부의 삶이 여전히 버겁기만 한 것은 단지 개인의 탓이기만 한 걸까.

책의 제목이나 표지에서 귀농부부의 이야기라는 걸 그다지 드러내지 않았다. 귀농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인정 많고 정겹고 포근하고 여유를 주는 즐거운 시골 이야기임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철없는 3년차 농사꾼 아내의 온갖 우여곡절이 담겨 있는 이 시골 이야기는 여전히 초판 1쇄로 남아 있다. 역시 대한민국 직업선호도 꼴찌에서 왔다 갔다 하는 농사꾼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농부가 직업선호도 상위권에서 왔다 갔다 하는 세상이라면……. 그래서 더욱 느릿느릿 자연과 사는 이야기가 빨리빨리 살아가는 데 유용하지는 않지만 소중하고 아까운 책임은 분명하다. 고유진/도솔출판사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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