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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9 17:12 수정 : 2005.10.01 00:17

벙어리새
류춘도 지음. 당대 펴냄. 1만1000원

어느 맑은날 ‘범생이’ 의대생에게 6·25는, 극장 영사기가 툭 멈추며 다가왔다 인민군 인간적 모습에 “이게 사회주의구나” 의용군 자원한 친구따라 군의관 종군 전쟁 참상 소용돌이에 인생 굴절 반세기 가슴에 묻어 둔 이들에 대한 소중한 증언

한국전쟁 참전방식을 거칠게 나누면 국군(1-a)과 인민군(1-b), 학도병(2-a)과 의용군(2-b), 구월산(3-a)과 지리산(3-b)에서의 유격대 등 세 가지. 이 가운데 a계열은 남한쪽이므로 우리에게 전모가 상세하게 알려진 편.

문제는 b계열. 1-b는 북한에서 잘 정리돼 있으나 3-b는 상보가 남쪽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전파된 특이한 양상을 보인 바 있다.

2-b계열은 남한 출신으로 북한군에 자원입대하여 남한군과 싸운 경우. 북쪽 사정은 모르거니와 남쪽에서는 그동안 쉬쉬해온 부분이다. ‘어느 의용군 군의관의 늦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벙어리새>는 바로 2-b계열에 속하는 희귀한 예다.

지은이는 일본에서 여고를 마치고 해방되던 해 한국에 돌아온 뒤 서울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해 졸업반때 6·25를 만나 군의관으로 의용 입대하여 남강전투 등에 종군하였다. 퇴각하던 중 포로가 된 그는 극적으로 형무소를 나와 의대에 다시 복학하여 졸업한 뒤 병원을 열어 활동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그가 참전한 것은 50년 7월부터 10월 미군 포로가 되기까지 불과 넉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피가 더운 스물세 살 젊은이가 보여준 역사를 향한 발언의 한 양식이라는 점, 여성의 섬세한 마음에 비친 전쟁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소중한 기록에 속한다.

“나는 … 전쟁이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파괴하며 강자가 약자를 어디까지 철저하게 짓밟는가도 보았다. 나는 이와 같은 전쟁의 부조리에 분노했고 망가져 가는 영혼에 통곡했다.”(서문)

좌우익 동거의 해방정국, 그는 의대를 다니는 ‘범생이’였다. 부곡에서 기차 통학하는 탓에 파업으로 인해 열차가 다니지 않을까, 수업시간에도 걱정을 할 만큼…. 좌익계열이 모였던 남산집회에 갔다가 기마대에 몰린 군중에 짓밟혀 정신을 잃었던 것은 특별한 경우였을 터. 또 얌전하기만 한 친구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상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6월25일은 유난히 날이 좋아 밀린 빨래를 하고 룸메이트와 영화를 본 날이다. 그날 수도극장에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를 보는 도중 ‘차르르’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영사기가 ‘툭’ 하는 소리를 내며 멈췄다.(62쪽) 그에게 전쟁은 그렇게 다가왔다. 돌아온 기숙사의 창틀에서는 밑반찬 항아리들이 햇살을 받으며 반짝였다.(66쪽)

27일 불안한 공백기. “이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그것이 무엇인지 내 눈으로 꼭 보아야 한다”(74쪽)고 다짐한다.

여성 섬세한 마음에 비친 전쟁 세밀화

류춘도씨는 가슴에 빗장지른 사연이 있다. 다름 아닌 6·25 때 의대생으로서 인민군에 지원하여 남강전투에 종군했던 일. 그는 남과 북에서 잊혀졌거나 재갈 물려진 ‘금기’를 50년만에 깼다. 이제는 누군가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은 의대졸업 뒤 개원한 청화부인의원.
그가 본 것은 무엇인가. 인민군관에 의해 소집된 병원 관계자들(학장, 교수, 의사, 학생, 청소부, 식당아주머니, 사환아이)이 한자리에 앉은 모습(88쪽), 똑같이 식당에서 줄을 서서 각자 밥과 반찬을 받아먹는 모습(107쪽)이다. 거기에서 ‘아,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구나’하고 감탄할 정도로 그의 생각은 나이브하다. 혁명이란 인민군이 되어 나타난 옛 친구의 깨끗한 녹색군복, 빨간 별이 달린 군모, 긴 가죽장화를 신은 자태로 기호화되어 있을 뿐이다.(92쪽) 부상당한 인민군 군관으로부터 밥을 받아먹는 병사의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흘러내리고 군관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에서 그들의 인간애를 발견하는(103~104쪽) 것은 사상과 무관한 것.

의용입대하는 계기도 단순하다. 어느 날 룸메이트를 비롯한 몇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유격대로 지원한 것이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앞으로 내가 갈 곳은 어디인가. 나는 친구들이 가는 길을 확인하고 싶어하지 않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119쪽) 그 길로 의용군에 자원한 그는 친구를 따라가게 되었다는 마음만으로도 흡족했다.(123쪽)

그는 전선을 따라가면서 비로소 전쟁을 목격한다. 파괴된 한강 인도교의 검붉은 핏자국에서 반인간적인 만행에 적개심을 느낀다.(125쪽) 수원 못미쳐 보도연맹원이 집단학살된 현장, 오산 근처 남의 땅에서 죽어 널브러진 미군 시체를 목격하며 전쟁이란 무엇인가, 왜 저토록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134쪽)를 고민한다.

그에게 전쟁이나 사상은 의식화가 아닌 체험으로 알게 된 ‘무엇’인 셈이다.

광주훈련소에서 그는 비로소 옛 친구와 똑같은 배추색 군복을 비로소(!) 입게 되고 나이 어린 간호보조원을 대신하여 보충부대에 자원하여 남강전선으로 이동한다.

남강 야전병원에서 밤낮을 잊고 네이팜탄으로 인한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그는 문간방 벽에 기대어 졸다가도, 부르는듯 한 소리가 들리면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160쪽) 마취약 없는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못 이겨 몸부림치는 부상병을 때려서 실신시켜야 했다. 그 역할을 하는 위생병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173쪽)

부상병을 후송하던 중 기총소사를 당해 자신 외에 모두 몰살당하기도 한다. 이때 그는 달을 보면서 묻는다. “왜 저 비행기는 우리를 쏘지? 우리 땅인데….”(178쪽) 이 말은 해방공간에서 함께 상경하던 같은 동네 동무가 미군에의해 차단당한 열차를 다시 움직이게 하면서 “즈그들이 뭔데 우리를 막노, 즈그들 땅인가?” 하고 분노하던 일(44쪽)을 빼닮았다. 같은 질문에 이르는데 5년이 걸린 셈이다.

간첩단 연루 죽음 넘나든 고문

그는 인천상륙으로 기계화 부대에 묻어 후퇴하다가 조치원 부근에서 녹색 군복을 벗고 흰 광목 윗도리로 갈아입는다. 마을들은 ‘저만치’ 침묵에 싸여 ‘거부하듯 노려보고 있었고, 그가 갈 곳은 그곳밖에 없었고, 그는 마을을 향해 다리를 끌었다.(225쪽)

군의관인 탓에 그의 전쟁은 야전병원이 최전선. 상대방과 직접 맞닥뜨리지 않았고, 군인으로서의 구실이 끝난 뒤 비로서 미군보병과 카투사를 조우했을 따름. 의용군의 맞은 편에 선 학도병을 만난 것도 청주형무소였다. 총을 겨누는 상대로서가 아니라 동생과 같은 경남중학교를 나온 인연으로 그를 빼내주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구원자로서다.

그의 전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음이 주목된다. 특무대에 끌려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부산여자간첩단 사건에 끼워넣어져 악랄한 고문을 당한다. 어쩌면 그동안 자신의 역정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50년도 일종의 전쟁이었는지도 모를 일.

그동안 금기로 여겨온 영역을 들여다 본다는 점보다는 ‘50년 벙어리’가 말문을 트면서 보여주는 디지털적인 선명함이 전율케 한다. 한사람의 인생역정 앞에서, 특히 현대사의 굴곡이 그대로 안고 있는 경우, 우리는 잠시 옷깃을 여며도 좋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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