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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교수·바이오시스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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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책으로 읽는 과학
아이콘 스티브 잡스제프리 영, 윌리엄 사이먼 지음. 임재서 옮김. 민음사 펴냄. 2005 “사람들은 이제 가게에 가지 않고 웹에서 물건을 사게 될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1996년 2월 미국의 테크놀러지 잡지 <와이어드>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나는 이 인터뷰 기사를 읽었을 때 그가 ‘과격한 몽상가’라고 생각했지만(물건을 보지도 않고 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옳았고 나는 틀렸다. 나 역시 그의 말대로 신간서적이 나오면 훑어보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한다. 지금은 상업광고계의 고전이 된 1984년 애플의 광고는 이미 그의 천재성이 예술과 만나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것을 예고했다. 영화 <에일리언>을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이 광고에는 대형화면에 빅 브라더가 등장해 똑같은 옷을 입은 노동자들을 통제한다. 한 소녀가 근육질 경비대에 쫓기며 무리를 탈출하다가 대형화면을 망치로 내리치는데, 이때 화면이 폭발하면서 목소리가 들린다. “1984년 1월24일 애플은 매킨토시를 출시할 겁니다. 여러분은 1984년이 왜 ‘1984’처럼 되지 않을 것인지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조지 오웰의 고전 <1984>를 뒤틀어 만든 광고였다. 나는 그 광고를 보면서 애플로 인해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가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그림과 창을 통해 컴퓨터의 내용을 간단하게 다룰 수 있게 된 것’도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방식도 매우 독창적인 데 더욱 매료됐다. 스티브 잡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의 활력이 된다. 최근에 출간된 <아이콘(iCon) 스티브 잡스>나 <아이시이오(iCEO) 스티브 잡스>(시릴 피베 지음, 이콘 펴냄, 2005) 같은 책을 읽다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자기반성이다. 대학 생활에 대한 후회랄까? 나는 왜 그때 그렇게 소심하고 자기중심적이었을까? ‘뭔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근사한 아이디어가 없을까’를 궁리하며 열심히 휘젓고 다니질 못했고, 내 삶의 영역을 벗어난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다음에 이내 드는 생각은 ‘아직 늦지 않았다. 나도 한번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 스티브 잡스가 가진 최고의 능력은 창조성과 기술을 행복하게 결합시켜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매킨토시와 토이 스토리, 그리고 아이포드(iPod). 스티브 잡스는 단지 신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의 것과는 다른 ‘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을 즐겼다. 스티브 잡스와 그의 친구들은 ‘우아함과 간결함, 그리고 혁신을 추구하는 반항아들’이었다고 평가한 저널리스트 시릴 피베의 지적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그가 창조한 모든 것이 매력적이지만, 비상과 추락,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결코 낙담하지 않는 그의 ‘영원한 젊음’이 나는 제일 부럽다. 오만한 천재, 기술 마니아, 과학과 예술을 진정한 의미에서 접목시킬 줄 알았던 이 시대의 구루. 그를 표현하는 수많은 찬사들이 있지만, 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스타일리스트’가 그에게 가장 걸맞다고 생각한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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