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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9 17:39 수정 : 2005.09.30 16:55

전쟁 대행 주식회사
피터 싱어 지음. 유강은 옮김. 지식의 풍경 펴냄. 2만3000원

식품조달부터 기지건설까지 모든 군사업무 대행하는 ‘핼리버튼’이 있었다 군사회사 없이 어떤 나라도 전쟁 엄두 못낸다 반대로 누구나 돈만 있으면 전쟁 일으킬 수 있다.

이라크에서 저항군에 인질로 붙잡혔다가 목숨을 잃은 김선일씨를 고용했던 회사는 가나무역이고, 그 원청업체는 브라운 앤드 루트였다. 미국 최대규모의 토목건설회사인 브라운 앤드 루트는 미국 5위의 군사계약고를 올리는 석유사업체 핼리버튼의 자회사다. 핼리버튼은 1991년 걸프전쟁 때 쿠웨이트 유정 복구사업을, 브라운 앤드 루트는 공공건물 보수공사를 따냈다. 이때부터 군사용역시장에서 부쩍 크기 시작한 이들 회사는 딕 체니 현 미국 부통령이 95년 당시 전직 국방장관 이력을 지닌 채 핼리버튼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 합류함으로써 반석 위에 올라섰다. 브라운 앤드 루트의 직원수는 약 2만명, 연간 총수익은 60억달러이며, 이 가운데 약 17억달러가 군사부문에서 창출됐다.

브라운 앤드 루트는 2003년 이라크침공 때도 주역자리에 끼었다. 기지 건설 및 경비, 쓰레기 수거, 경호업무, 최신형 무기 유지·보수, 식품조달 및 병사식당 운영, 세탁, 우편 업무 등 직접적인 교전행위 외의 모든 군사업무를 브라운 앤드 루트 등 사기업이 도맡았다. 지난 한해 이라크에서 일한 이런 사기업 직원은 1만5천-2만명으로 주둔 미군 10명당 1명꼴을 넘었다.

전쟁터가 곧 돈벌이 사업장인 이들 ‘민간 군사기업’이 전쟁의 역사를 바꾸고, 나아가 국가의 기존역할마저 뒤흔들어 놓고 있다. 미군은 이제 브라운 앤드 루트와 같은 민간 군사기업들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대규모 군사개입을 할 엄두도 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런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이들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으나, 이 ‘혁명적 변화’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대다수 사람들은 거의 까막눈이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군사문제 전문가 피터 싱어가 쓴 <전쟁 대행 주식회사>(지식의 풍경 펴냄)는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원제 는 ‘기업 전사들: 사영화한 군사력의 대두’ 쯤으로 이해된다. 이에 따르면, 브라운 앤드 루트는 그나마 직접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고 병참에 주력하는 ‘군사지원기업’으로 분류된다. 보잉서비스, 홈즈, 나버 등이 이에 속한다.

앙골라반군 궤멸시킨 것도 민간회사

그리고 군사작전상의 자문 및 훈련용역을 제공하는 ‘군사 컨설턴트기업’, 그리고 전투에 직접 가담하는 ‘군사 공급기업’들도 수다하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을 쓴 백인정권 시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제32 대대 부사령관 및 남아공민간협력국 요원을 지낸 이번 발로가 1989년 설립한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는 대표적인 군사 공급기업이다. 무자비한 살륙과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인사 암살 및 첩보활동으로 악명높았던 32대대 등의 출신자들로 구성된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는 30여년간 계속된 앙골라 내전에 정부 돈을 받고 개입해 일거에 반군을 궤멸시켰으며, 시에라리온과 파푸아뉴기니, 인도네시아에도 뛰어들어 내전양상을 뒤집었다. 아프리카 군대 병사 평균급여 수준의 10배가 넘는 월 2천-1만3천달러의 급여에 의료·생명보험까지 제공하는 파격적인 대우가 마력을 발휘했다. 샌드라인, SCI, NFD 등이 이에 속한다.


냉전붕괴 이후 걸프전쟁, 이라크침공 등 대국들의 개입전쟁과 내전에는 기지건설, 무기 유지 및 보수, 병사식당 운영, 세탁, 우편 등 대부분의 군사 지원 업무를 대행해준 민간군사회사들이 맹활약했다. 사진은 2003년 10월 이라크 바그다드 서부 칼디야 지역을 수색 중인 미군 탱크들. 칼디야/AP 연합
군사 컨설턴트기업의 대표적인 예는 역시 미국의 MPRI, 비넬, 레브단 등이다. MPRI는 걸프전 때 미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퇴역 4성 장군 칼 부오노가 회장으로 있는데, “전문성과 미국의 대외정책 목표에 대한 충성”을 모토로 삼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콜럼비아, 나이지리아 등에 깊숙이 개입했다. 비넬은 BDM이라는 군사용역회사의 산하회사인데, BDM은 전 미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와 전 국방장관 프랭크 칼루치 등이 중역으로 포진한 투자회사 칼라일그룹 소유였다. 이들 회사는 미군의 ‘위장용 간판회사’가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범죄집단’이라는 국제적 비난도 사고 있다.

전세계를 무대로 활약중인 이들 민간 군사기업 수는 약 500개에 이른다. 앙골라 내전에는 이런 군사용역업체 80여개가 몰려들었다. 이들 기업 직원들은 미국 그린베레 대원, 프랑스 외인부대, 남아공 공수부대, 우크라이나 조종사, 네팔 구르카 전사 등 세계 곳곳의 베테랑 군인출신들이다.

‘현대의 용병’으로도 일컫는 이들 조직은 그러나 전통적 용병과는 다르다. 이들은 영리 법인조직, 즉 사업상의 이익을 목표로 한 영구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고, 세계시장에서 공개적으로 경쟁하며, 더 큰 금융지주회사나 복합기업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많은 정규직원이 필요 없고, 적절한 군사 기능을 지닌 전문인력 데이터베이스만 구축해 놓고 필요할 때 즉각 동원하기만 하면 된다. 무기 등 군사장비를 싼 값에 언제라도 쉽게 다량 구입할 수 있는 시장이 곳곳에 존재하고, 퇴직군인과 실업자 양산에 따른 동원가능 인력도 넘쳐난다. 지역국가들의 쇠퇴속에 수요를 부르는 분쟁은 증가일로지만 유엔 등 국제기구들은 무력화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이나 월드비전 등의 국제기구, 비정부기구들도 민간 군사산업에 안전을 기대고 있다. 엄청난 성장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모두 냉전 붕괴와 신자유주의적 시장 중시의 세계화·민영화가 급속도로 진전된 최근 지구촌 변화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유명군사회사 한국지사도 설립

그리하여 이젠 국가만이 아니라 특정 기관이나 기업 등의 조직, 심지어 개인들도 돈만 있다면 국가까지도 포함한 집단이나 지역의 운명을 뒤바꾸어놓을 수도 있는 크고 작은 전쟁에 개입하거나 도발할 수 있는 시대로 가고 있다. 가히 ‘혁명적 변화’다. 민간 군사기업은 정규군보다 훨씬 운용 비용과 위험요소가 적고 정치적 부담도 줄어든다. 돈과 힘을 지닌 대국들이 별 부담 없이 소국들의 운명에 개입할 여지도 그만큼 많아질 수밖에 없다. 동맹과 안보의 기존 개념도 온존할 수 없게 돼간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3일 국방부는 보급, 정비, 인쇄, 지도창, 복지단 등 총 28개 지원부대의 아웃소싱 계획이 포함된 ‘국방개혁 2020’을 발표했다. 미국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가 올해 3월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을 담당했던 이환준 대령(전 국방부 대미사업부장)을 부사장으로 영입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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