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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올림피아호텔에서 열린 ‘민주화·세계화 시대의 양극화’ 대화모임에 참가한 세 학자. 왼쪽부터 이정우, 최장집, 박세일 교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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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시대’ 대화모임
결론은 사회대타협이었다. 다만 그 곳으로 향하는 길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정우·박세일·최장집 교수가 동시에 발제자로 나서 관심을 모았던 ‘민주화, 세계화 시대의 양극화’ 대화모임이 지난달 29일 열렸다. 오후 2시부터 저녁 9시까지 서울 평창동 올림피아호텔에서 장장 7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최장집교수 “노동없는 민주화 심각” 지적에
박세일교수 “자융없는 민주화가 문제”
성장-배분 우선순의 두고도 토론자간 이견 서로 다른 생각들이 끊임없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정면 논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차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주저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고 각계를 망라한 뜻깊은 자리였지만, 진정한 ‘대화’를 향한 길이 아직 멀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 그친 아쉬움도 강했다. 노동없는 민주화/자유없는 민주화= 가장 의미심장한 ‘차이’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박세일 서울대 교수 사이에 발생했다. 최 교수는 ‘노동없는 민주화’의 문제를 짚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병행하는 것은 노동이 참여하는 경제체제”인데도 “노동을 억제·배제하는 노동없는 민주주의”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박 교수는 “자유없는 민주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화 이후 자유민주주의로 가지 못하고 대중을 조작하는 포퓰리즘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찮았다. 성한표 실업극복국민재단 상임이사는 “자유없는 민주화라는 레토릭을 쓰면서 강조하는 자유가 기업의 자유만을 말하는 것이라면 위험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이 문제는 양극화 해법을 노동의 시민권 확보에서 찾을 지, 기업의 자유권 확대에서 찾을 지에 대한 ‘근본 문제’였지만, 더 깊은 논의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분배를 낳는 성장/성장을 이끄는 분배= 박 교수는 “꺼져가는 성장동력을 살리는 게 양극화 극복의 1차 정책과제”라고 말했다. 정갑영 연세대 교수도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투자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론들이 쏟아졌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분배개선이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고 반박했다. “성장을 이루면 분배가 해결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않고 있다”(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양극화를 성장 문제로 설명하는 것은 지난 40년간 우리를 지배했던 수출입국의 패러다임”(이형모 <시민의신문> 사장) 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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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주요 발언(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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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정부?/우파 정부?= 참여 정부의 성격 문제도 나왔다. 장기표 새사회연대 대표가 “참여 정부의 분배론은 사회주의적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정우 교수는 “사회주의니 좌파니 시비가 많았지만, 아직까지도 참여정부의 정책 중에 무엇이 사회주의적인지 구체적으로 들어본 바 없다”고 반박했다. 최장집 교수도 “참여 정부를 좌파적, 반시장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됐거나 과장된 비판”이라고 말했다. 이광택 국민대 교수는 “노동계는 정부 출범 넉달 만에 기대를 접었다. 우파들은 (참여정부를) 좌파로 보는 것 같은데, 노동계가 보기에는 오히려 우파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사회대타협, 그러나 어떻게?= 참석자들은 “서로의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미래를 놓고 경쟁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방법”(김명섭 연세대 교수) 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이종오 명지대 교수는 “대외적 취약성 등으로 인해 한국에선 결국 점진적 개혁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데, 이는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장집 교수는 “남북문제, 한미관계 등은 대외적 변수가 크게 작용하지만 노동문제는 내부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이자 균열”이라며 “정치적 역량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내오는 것이 한국 사회가 당면한 최대 과제”라고 짚었다. 그러나 구체적 경로에 대해선 깊은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절대적 우위, 노동과 정부 간 불신과 배척, 낮은 노조 조직률로 인한 대표성 문제 등 산적한 과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겨졌다. 다만 “기업과 노동과 정부, 시민단체들이 다같이 참여하는 대타협”(이종오 교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기업 노조와 중소기업노조,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정부 등이 함께 모이는 회의체”(박세일 교수) 등 과거 노사정위원회의 틀을 크게 확대하자는 제안들이 나왔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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