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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박제가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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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속이고 정력 과시에 음담패설 일삼아
안대회 교수, ‘인간 박제가’ 자료 발굴
"내가 소시 적엔 말이지, 관서 땅 동기(어린 기생)와 함께 서까래 같은 촛불 두 개를 켜 놓고는 먼동이 터올 때까지 밤이 새도록 뒹굴고 나니 촛불도 바닥을 보였지."
1792년 9월 20일, 43세에 부인 덕수이씨를 잃고 홀아비가 되고, 이듬해 1월 25일에는 그렇게 의지하던 청장관 이덕무(1741-1793)마저 잃고는 실의에 빠진 나날을 보내게 된 초정 박제가(1750-1805).
젊은 소실을 들이려는 그를 주변 사람들이 "자네가 젊은 여인을 어떻게 감당하려는가"라고 놀리자 박제가는 아직도 정력은 문제없다면서 이렇게 받아친다.
하지만 박제가는 여복이 그다지 없었다. 아니, 키가 유난히 작아 걸핏하면 친구 유득공(1749-1807)에게 난쟁이라고 놀림을 받던 그는 여자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던 듯싶다. 어떤 주변 사람이 이런 그를 이렇게 놀려댔다.
"안의 기생은 마음은 끌리나 너무 어려서 아깝고 / 가릉 기생은 인연 깊으나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고 말았네 / 이번 길엔 탁문군 같은 여자 만나지 못하면 그 어디서 양귀비 같은 여자를 찾을쏜가?"
도대체 박제가에게 무슨 여성 편력이 있었기에 이런 조롱이 나왔을까?
홀아비가 되고, 불미스런 일에 말려 지방관에서 파직까지 당한 박제가는 심신을 식힐 겸 스승 격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을 찾아간다. 당시 연암은 경상도 안의현감으로 있었다.
박제가를 걱정하는 연암. 연암은 13살 난 어리디 어린 기생을 초정 잠자리에 밀어넣었다. 거절했다는 말은 없는 것으로 보아 박제가도 싫지는 않았다. 아마도 "서까래 같은 촛불이 다 타도록" 이 어린 기생과 질펀한 밤을 보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연암은 박제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기생은 자네가 데려가 소실로 삼게나."
하지만 속내야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나, 상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기생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서울로 올라오고 만다. "안의 기생은 정이 끌리나 어려서 아깝다"는 시는 이 사건을 두고 한 말이다.
상처하기 2년 전인 1790년, 사신단 일원으로 중국에 가는 길에 초정은 평안도 가산이란 곳에서 시기, 즉, 시를 잘 하는 기생인 육애라는 여인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만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런 역경들을 딛고 마침내 박제가는 소실을 들인다. 당시 관례가 그렇듯이 백년가약은 매파가 나서 주선했다. 매파는 중간에서 오가며 신랑감과 신붓감 모두 훌륭하다고 요란을 떨었던 모양이다. 한데 박제가의 많은 나이가 문제가 됐다.
이에 박제가는 매파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낭군(신랑감) 나이가 많으면 필시 신부 집에서 의심하리니 / (신랑) 나이를 보태고 더는 일은 자네 뜻에 맡겨두겠네."
매파가 적당히 알아서 나이를 속이라는 의미다.
'개그맨' 뺨치는 익살꾼 박제가는 키는 땅딸막했으나 덥수룩한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청장관 이덕무 집에 가서는 그 손자를 뒤에서 갑자기 껴앉고는 그 덥수룩한 수염을 얼굴에 마구 비벼대며 놀래주곤 했다.
이런 장난이 심해 이규경(1788~?)으로 생각되는 청장관의 손자는 경기 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어린 신부를 소실로 맞이하게 된 박제가에게 어떤 주변 사람이 이렇게 농을 친다.
"기생들의 입술엘랑 청장관 손자를 놀래키던 수염을 들이대게나."
소실을 맞아들였다는 내용을 포함해 지금까지 전혀 밝혀지지 않은 박제가의 이런 일상과 관련되는 생생한 증언담이 발굴됐다.
박제가와 교류한 동시대 작가 이기원(1745-?)의 문학작품집인 '홍애집'을 한국풀학 전공 안대회 명지대 교수가 찾아냈다.
연암 박지원을 비롯한 소위 백탑파 문인들에 관한 자료를 풍부하게 담은 이 문집 수록 글 중에서도 '희제박차수최장시' 10수를 비롯한 시 작품이 박제가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안 교수는 이들 작품에는 본문 격인 시를 설명한 이기원의 주석이 있는데 특히 '희제박차수최장시'는 초정이 소실을 얻을 때 장난삼아 지어준 것"이라며 "부여현감으로 재직하던 초정이 소실을 얻게 된 배경과 중매하는 매파와 흥정하는 모습, 초정이 그 동안 육체적 관계를 나누었던 몇몇 기생의 존재, 초정의 키와 복장, 젊은 여자와의 성생활 등이 유머러스하게 소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한국풀학회와 한국실학학회, 그리고 경기문화재단은 공동으로 오는 12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18세기 조선, 새로운 문명기획'이라는 주제로 개최하는 박지원ㆍ박제가 서거200주년 기념 국제실학학술회의에 이를 발표한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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