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06 16:58
수정 : 2005.10.07 15:12
동아시아는 지금
미국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사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이달 초 고화질의 영상을 기록할 수 있는 차세대 DVD(디지털 비디오디스크)용 소프트를 에이치디(HD-DVD) 방식과 비디(BD·블루레이 디스크) 방식 두 가지 규격으로 동시에 발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표준규격 선점을 둘러싸고 베타방식과 VHS방식으로 나뉘어 업계가 혈전을 벌였던 과거 ‘비디오테이프 전쟁’을 연상시키는 ‘차세대 DVD 전쟁’ 양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지금 판세는 도시바 등이 선도하는 HD그룹과 역시 일본 소니와 마쓰시타전기산업이 선도하는 BD그룹으로 양분돼 있다. 둘 사이에 호환성은 없다. 이제까지 파라마운트는 워너 브러더스와 함께 HD쪽을, 디즈니와 20세기 폭스는 BD쪽을 지지해왔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가격이 비싸진다는 이유 등으로 동일한 소프트를 두가지 규격으로 만드는데는 부정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이런 판에 HD편을 들어온 파라마운트가 양쪽 규격을 함께 만들겠다고 밝힌 것은 BD그룹으로선 반갑기 그지없다. 파라마운트는 방침변경의 이유로 “BD가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3에 탑재되는 걸로 결정나 비용이나 제조방법, 저작권 보호 등의 면에서 납득할만한 진전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판에 양다리를 걸쳐 위험부담을 줄이겠다는 심산인데 다른 영화사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도시바는 올해 안에 HD방식 재생기를,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3을 내년 봄에 출하할 예정이다.
소니쪽은 “BD가 기록용량이 커 장시간용 영화에 적합하다”며 기술상의 우위를 주장한다. 반면에 도시바쪽은 디스크 생산비가 낮은 HD의 경제성을 내세우고 있고, 정보기술(IT)업계의 왕자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이에 호의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비디오테이프 전쟁 때는 지금 같은 편인 소니와 마쓰시타가 대적했는데, 필립스와 손잡고 할리우드 영화사를 포섭한 마쓰시타의 VHS방식이 기술면에서 앞섰던 소니의 베타방식을 물리쳐 세계표준 자리를 차지했다. 중대한 일전인 만큼 어느쪽도 양보할 수 없는 처지여서 그동안 규격통일을 위해 양쪽이 협상을 벌였으나 실패로 끝나, 결국은 소비자 곧 시장의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자국 업체들이 피터지게 싸우며 기술을 높이고 판을 키워놓겠지만 결국 승패를 가를 최종 판정자는 할리우드 영화사들이며, 정작 재미를 볼 곳은 이들과 어부지리를 노리며 양쪽방식 겸용 기기 개발에 착수한 삼성전자 등 한국업체들 및 대용량 하드디스크(HDD) 탑재 DVD재생기 메이커들이 아니겠느냐며 경계하는 소리들도 나오고 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