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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6 17:36 수정 : 2005.10.07 15:13

서울 청계천 살리기 연구회에서 교통전문가역을 맡아 일하면서 이번 복원 사업에 한몫을 단단히 한 황기연 교수.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시청앞 광장·중앙차로제 등 잇따라 내놔 자동차에 뺏긴 혜택 보행자가 되찾아야지 청계천 다 걸어보지도 못했어, 너무 불편해 평소 걸어다닐 때 일부러 신호위반 많이 해 파란불이라고 쌩쌩 달리는 차는 공공의 적 ‘보행도시’ 서울 위해선 ‘교통신호’ 깨뜨려 길의


권은정의 인터뷰 무제한/청계천 살리시 참여한 황기연 교수

‘수많은 사람들이 런던 브릿지 위를 흘러가네’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도시 속의 군중을 이렇게 그려 놓았다. 정말 청계천 다리 위를 사람들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청계천과 사람들의 얼굴이 수 십 년만의 상봉을 즐기고 있었다. ‘땅 속에 묻혔던 물길이 다시 찾아오니 그 어찌 반갑지 아니하랴’고 공자님도 말씀하셨지만 (아닌가?), 어쨌든 갇혀 있던 게 풀려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일종의 감동이다. 이번 복원사업에 단단히 한몫을 한 황기연 교수(48. 홍익대 도시공학과)와 약속시간을 정하는 데에는 이명박 시장의 역할이 있었다.

“아, 그 시간은 좀 곤란해요. 세계도시 시장포럼 중인데 제가 시장님 뒤에 배석을 해야 하거든요. 다른 시간으로….” 그리고 좀 일찍 만나자는 연락이 다시 왔다. “시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 제 시간이 괜찮아요.”

나는 속으로 그가 이 시장을 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서울을 보러온 시장님들이 나름대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옆 한적한 회의실이 우리의 자리였다.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도시 교통을 공부한 황 교수는 92년 8월부터 서울시 산하 정책연구기관인 시정개발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번 9월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장장 13년간이나. 그러니 뒤에 앉아 있다가 혹 시장님이 숫자에 막히거나 연도를 헷갈릴 경우 귓속말로 전해주는 배석의 임무에 적임자일 듯 했다. 어쨌든 ‘시장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우리는 이야기를 마쳐야 했다.

그는 청계천 살리기 연구회에서 교통전문가역을 맡았다. 교통전문이라지만 그는 기존의 교통 개념과 좀 다른 차원이다.

“사실 승용차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대중교통과 보행이 저의 주된 관심입니다. 어떻게 하면 승용차 이용을 줄이고 사람들을 걷게 만들 수 있나 그거죠.”


이번 청계천복원도 결국 사람들을 걷게 만든다고 그는 주장한다.

“시민들이 걷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로의 양을 상당히 줄여야합니다. 기존 교통학자들은 도로를 줄이면 교통이 막힌다고 여기지만 오히려 반대지요. 사람들이 차를 덜 타게 되니까요.”

지식인 자발적·희생적 봉사 소중

복원사업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벌써 그는 서울시의 교통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거라고 알아봤다. 고가도로를 걷어내면 심각한 교통체증이 올 거라고? 오히려 반대일 거라고 우겼다.

“공사를 통해 이미 경험했습니다. 도로를 줄이면 오히려 차량소통이 좋아지는 게 바로 교통의 역설입니다. 도로는 차를 흘려보내는 기능과 함께 차를 유인하는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으니까요.”

청계천 사업에서 얻은 경험은 서울시의 교통정책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었다. 교통연구부를 맡고 있던 그는 시청앞 광장, 버스 중앙차로제 등을 시리즈로 내놓았다.

“도로의 여건이 달라지면 자동차는 다른 방도를 찾기 마련이지요. 도로의 용량을 줄여서 그 길을 보행로로 확장하는 사업이 점차 정착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그동안 많이 내려온 거지요. 위에서 아래로. 입체교차로도 많이 없앴지요. 육교도 없애고 차도를 광장으로 만들고, 도로의 폭을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이야기 주제가 청계천이 아니라 오히려 보행자 권리로 옮겨갔다. 평소 대중교통과 보행위주로 이동의 삶을 영위하는 나로서는 할 말이 많았다. 서울시내에서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정거장으로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 툭하면 지하도에다가 또 건널목은 얼마나 인색한지, 오죽하면 광화문 건널목 하나를 텄다고 서울시가 그리 생색을 내는데도 가련한 시민들은 그저 감지덕지한다 등등. 그는 달래듯이 말했다.

“조금씩 바꿔질 거라고 봐요. 너무 빨리 바꾸면 반발이 심하니까요. 특히 자동차 업계에서요. 사실 보행환경을 좋게 하는 것은 대중교통을 성공적으로 개혁하는데 필수적인 여건이지요.”

청계천 주변도 걷기에는 여간 불편하지 않다. 좁은 보행도로와 잦은 신호등, 사람보다 언제나 많은 자동차들. 그는 청계천을 몇 번이나 오락가락 해봤는지?

“아휴, 다 걸어보진 못했지요. 많이 불편해요. 솔직히 아래로 내려가야 걷는 게 가능하지 위에서는 도로를 건너갈 수가 없어요.”

좀 의외다. 적어도 수십 번은 걸어봤다고 대답할줄 알았는데.

“이동의 연속성이 중요하지요. 앞으로 청계천 주변을 걷기 좋게 만드는 것이 주요과제인거죠. 신호를 기다린다고 몇 분씩이나 기다려야한다면 걸을 재미가 안 나죠. 사람들은 자기가 건너기 가장 편한 곳에서 건널 수 있어야 하거든요.”

황 교수는 걸어 다닐 때는 신호위반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실 신호는 자동차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사람을 피해서 조심해서 달리라고 있는 거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게 신호다, 신호만 믿고 달리는 차들은 공공의 적이다…. 황 교수가 이런 ‘과격한’ 주장을 쏟아내는 동안 나는 혹시 운전자가 엿듣지나 않는지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보행도시’ 서울은 아직 꿈같은 공상이 아닐까? 배낭여행 다녀온 사람들이 외국 유명도시에서야 당연히 그렇다고들 하지만.

“글쎄, 그렇게 말씀들을 하시는데 틀린 말이에요. 사람들이 가면 차는 서야 하거든요. 여태 자동차가 사람을 길들였는데 이제는 사람이 차를 길들여야지요. 자꾸 말을 해야 해요. 우리는 행인들이 너무 순해요. 길들여져 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거예요. 요구하고 부르짖어야 해요. 길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정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걷지 않는다면 직립으로 서 있을 필요가 없다’고 프랑 미셀은 말한 적이 있다.‘걷기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 걷기는 무기력한 관성의 안티테제’라고 주장한 미셀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황 교수의 얼굴을 다시 한번 뜯어보았다. 혹시 그의 얼굴에도 모든 뚜벅이들이 가지는 ‘위엄과 예민함을 지니고 자유를 배우는 수련의 예비단계’에 든 표정이 보이는지. 그는 완전한 뚜벅이는 아니라고 한다. 연구를 위해 자동차를 타보기도 해야 한다며.

어쨌거나 황 교수는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도 보행에 관한 가장 인본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의 소유자중 한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다음 과업은 ‘신호를 깨는 일’이라고 엄숙히 말했다. 그동안 자동차가 누린 만큼의 혜택을 보행자들도 누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 이제 미래세대는 그렇게 가야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문화·역사계쪽 불만은 짧게 외면

그는 자신이 보행만큼이나 사회의식에서도 선진적이라고 약간 목소리 톤을 낮추어 <청계천 살리기연구회>의 의미를 설명한다.

“전 평소 자율적인 연구를 하고 또 그것을 통해 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식인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믿어요. 이번에만 해도 노수홍 교수 같은 분의 의식적이고 실천적인 기여가 컸지요. 지식기반 리더들의 자발적이고 희생적인 봉사라고 볼 수 있지요. 우리사회 곳곳에 묻혀 있는 힘을 적절히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주5일제 근무로 늘어난 휴일을 사회변화로 쓸 수 있게 분위기를 잡는 게 역시 중요하다며 자신의 생산적인 휴일을 소개한다.

“돈이나 벌어주고 공부 안한다고 혼이나 내는 게 아버지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바꿨지요. 매주 토요일 저녁 아들과 그 친구 애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주도 안빠지고 합니다. 부모들도 모여 교육도 고민하고요.”

그는 아주 긍정적인 ‘바른 생활주의자’인 듯했다.

긍정일변도인 그에게 청계천 복원에 대한 문화 역사계 쪽의 불만에 관해 물었다. ‘묻혀 있던 것을 드러낸 것만 해도 큰 성과 아니겠느냐’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길게 답할 용의가 없어보였다. 대신 이번 사업으로 서울시의 환경이 얼마나 업그레이드 되었는지 증거를 들이댄다.

“세계 언론을 보세요. 우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개발의 시대를 남들보다 빨리 달려온 게 사실이지만 또 누구보다 그 상처를 빨리 치유하고 있다고 세계는 보고 있습니다.”

다리를 둥둥 걷고 물장구를 치던 아이들, 어… 진짜 물이 흐르네 하며 신기한 표정을 짓던 시민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들은 과연 앞으로 청계천 덕분에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

권은정/전문 인터뷰어
“행복지수를 지불의사력으로 산정해볼 수 있는데요. 세금을 얼마나 낼 용의가 있느냐 물어봤더니 가구마다 1년에 10만4천원 정도 낼 수 있다고 나왔어요. 깨끗한 물, 역사문화 복원, 바람길 등의 항목으로 나눴는데 물에 대한 지불의사가 6만원으로 가장 높게 나왔어요.” 6만원이나! 옛날처럼 천변에 나앉아 빨래를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비싼 거 아니냐며 물어보려는 순간 그의 핸드폰이 울린다.

황 교수가 전화를 받고 일어설 준비를 한다.

“저, 시장님이 오셨답니다. 그만 이만 가봐야….”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이 시장의 등이 보였다. 황 교수가 배석을 하기 위해 재빨리 따라 들어갔다. 보행 진보주의자 황 교수의 행보가 나와는 달랐지만 걷기에 관한 한 그와 나는 동지로 여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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