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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탄생
최경봉 지음. 책과함께 펴냄. 1만4900원 |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 결성 대장정 표준어 근거된 ‘서울에 사는 중류층’ 108명 발기 철자법 놓고 “문법대로” “표음대로” 7년간 공방 정작 뜻풀이는 언중의 말보다 직관 의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원고 실종 해방뒤 되찾아 12년만에 ‘우리말사전’ 완간
우리말 사전은 미치지 않고는 못 만든다. 작업량이 워낙 방대하고 다뤄야 할 분야가 다기할 뿐더러 그 과정이 길고 지리하여 여간한 정성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치는 대상이 ‘우리’일 수도 있고 ‘말’일 수도 있으며 그 모두일 수도 있다. ‘말’에 방점을 찍으면, 말이 지식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에서 ‘문명의 사고(史庫)’를 채운다는 자부심과 이어질 터이다. ‘우리’에 강조점을 둔다면, 잃은 나라를 다시 찾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도정과 일치할 터이다. <우리말의 탄생>(책과함께 펴냄)은 ‘우리말 사전’을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1945년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조선어학회의 원고뭉치를 되찾은 사건은 사전 만들기의 지난함을 상징한다. 13년에 걸쳐 집적한 자료가 소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법원으로 운송되다가 실종되었던 것. 곡절 끝에 이 자료는 1945~1957년 여섯 권의 ‘큰 사전’으로 완간되었다. 걸린 기간이 길기도 하려니와 일제의 지배, 해방, 남북분단, 전쟁 등 현대사의 시련을 고스란히 관통하고 있다. 그러하니 그 사연으로 책 한 권을 엮고도 남지 않겠는가. 해방공간에서 첫째 권이 나왔을 때 천도교회관(조선어학회)과 기독교청년회관(조선문학가동맹)에서 잇따라 출판기념회를 연 사연,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관리들이 모아 일본에 바치기로 되어있던 국방헌금 82만원을 특별기금 형식으로 기부받아 출판의 씨돈으로 삼은 일 등은 특기할 만한 것 중 하나다. 우리말 사전 만들기 대장정은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가 뜨면서 시작된다. 총독부에서 만든 것을 포함해 외국인이 만든 대역사전이 고작인 현실에서 ‘조선인을 위한, 조선인에 의한, 조선어사전’의 요구는 컸다. 발기인 108명은 식민사회에서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춘 부르주아적 민족주의자들. 무지한 민중을 계몽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발기인이 성분은 추후 ‘서울에 사는 중류층이 사용하는 조선어를 표준어로 정한다’는 원칙이 세워진 것과도 연관된다.표준어사정위원 절반이 경기 출신 조선어학회의 사전 작업은 우회과정을 거치는데, 총독부의 철자법 개정 작업에 적극적으로 간여해야 했던 사정 때문. 담당자들은 ‘규범은 국가 혹은 그에 준하는 기관의 권위에서 나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을 터. 조선어학회는 1936년까지 맞춤법, 표준어, 외래어 표기법 등을 제정하는데 진력한다. 조선어학회는 엄격한 문법 원리에 입각한 형태주의 철자법을 건의하고 심사위원으로 적극 참여한 결과 자신들의 소신을 관철시켰다. 이에 표음주의적 옛 철자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반발이 일고 상당한 기간동안 격렬한 논쟁이 뒤따랐다. 철자법이 학문과는 무관한 ‘사회적인 약속’이란 점에서 소모적이었으며 이로 인해 사전편찬작업이 지연되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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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전>은 편찬위원회 발기 이후 28년만에 여섯 권으로 완간되었다. 무엇이 이렇게 방대하고 지리한 작업은 가능하게 했을까. 이 작업이 나라 되찾기와 새나라 만들기의 시기에 걸쳐있는 것은 ‘나라’가 그 동력이 아니었을까 추론하게 만든다. 사진은 1935년 1차독회를 마친 표준어사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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