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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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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네 멋대로 써라데릭 젠슨 지음/ 김정훈 옮김/ 삼인 펴냄 팔자에 없는 글쓰기 강좌를 맡아 지난 봄부터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아무리 새로운 세대가 영상문화에 익숙하더라도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에 그토록 저항감이 클 줄은 미처 몰랐다. 마침내 강의실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려 수업을 진행할 의지를 잃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학생 탓만 할 수는 없다. 좀더 세련되고 유연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이끌어나가야 할 책임이 가르치는 사람에게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글쓰기의 가치와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면죄부를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상태이다. 데릭 젠슨의 <네 멋대로 써라>는 실망과 분노, 그리고 허탈감에 빠져 있는 한 사이비 글쓰기 강사를 크게 격려, 고무해주었다.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게 읽었던지, 나는 이 책을 일러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장점을 고루 성취하고 있으면서, 그 두 책이 미처 담지 못한 것까지 아우르고 있다, 고 평할 정도다. 이 두 권의 책을 읽은 이라면, 방금 한 말이 얼마나 극찬인지 알리라. 책에 대해서라면 도통 흥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예외인 셈이다. 이 책이 킹과 골드버거의 것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점은 자전적 요소를 표나게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각별히 젠슨은 대학과 교도소에서 글쓰기를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현장감이 더 넘친다. 킹과 직접적 연관성을 보이는 곳은 글쓰기의 여섯째 규칙을 말하는 대목이다.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를 설명하면서 킹이 말한 “특정한 걸 갖고 와라”를 인용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글쓰기를 낚시에 빗대어 말하는 데서 두 사람은 겹친다. 써야 비로소 영감이 떠오른다는 면에서 두 사람은 뜻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통제를 멈추고 쓰고 싶은 걸 실컷 쓰라는 주장은 골드버그와 통한다. 젠슨만의 독창성은, 이름하여 정치적 올바름이라 할만한 것에 있다. 지은이가 학생들에게 가장 힘주어 말한 것은 권위를 의심하라였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사람들이 글을 못 쓰는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예의 차리는 사람, 붙임성 좋은 사람,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 등급 매기기를 원하는 사람, 모든 강한 의견, 모든 강한 충동 앞에서 얼버무리는 사람. 그 사람은 지랄 같이 가치 있는 걸 쓸 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우리 안에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무려 “백명이 들어 앉아” 있다. 그 각각에 자기 생각이 있고,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이들의 말을 받아적기만 해도 좋은 글이 되게 마련이다. “다른 모든 건 그냥 기술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이 책을 상찬하는 것은 글쓰기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같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잔재주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집요하게 물어보려 했을 뿐이다. 지금 상황이 만족스럽냐, 아니라면 이유가 뭐냐,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겠냐, 그럼 그것을 글로 써봐라, 라고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열정의 방아쇠를 세게 당겨 자의식을 떨쳐버리고 느낌과 말과 뜻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드는 지름길이라 믿어서였다. 그런데, 나는 실패했고, 젠슨은 성공했다. 그 이유를 스스로 밝히자면, 그의 타고난 엽기적 유머가 나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젠슨의 책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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