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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7 18:40 수정 : 2005.10.07 18:40

한국의 문화연구는 90년대 초부터 본격화됐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대중문화의 급성장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서태지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상징이었고, 문화연구는 바로 이 지점에 착목한 새로운 이론흐름이었다. 사진은 90년대 중반, 연희동 서태지 집 앞에 모여든 팬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계간 ‘문화과학’ 편집인들 주축 중앙대에 석박사학 과정 개설


전국 각지에 생겨난 각종 ‘문화센터’와 ‘문화아카데미’들은 큰일 났다.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문화연구학 석·박사 과정이 중앙대학교에 생긴다. 그동안 여러 문화연구자·문화비평가들이 ‘재야’의 교양강좌 형태를 빌려 파편적으로 진행했던 비판적 문화연구 수업이 대학원의 정식 학문과정으로 격상한 것이다. 80년대 후반 몇몇 대학에서 정치경제학 수업이 등장했던 것과 비견될 만하다. 작지만 의미있는 ‘사건’이다.

일을 저지른 것은 중앙대에 포진한 진보성향의 교수들이다. 강내희·정정호 교수(영문학과), 신광영·김경희 교수(사회학과), 김누리·노영돈·오성균 교수(독문학과), 육영수 교수(사학과), 진중권 겸임교수 등이 함께 문화연구학과를 만들었다. 10일부터 14일까지 원서를 받아 석사 과정 학생을 뽑고, 내년 봄부터 강의에 들어간다. 문화이론·문화비평·문화기획·문화정책·대중문화 등 무려 25개 과목의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눈치빠른 사람들은 문화연구학과를 이끌 면면에서 계간 <문화과학>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강내희 교수가 <문화과학>의 발행인이고, 김누리 교수가 편집위원이다. 소속 대학이 달라 직접 참여하진 못했지만, <문화과학>의 다른 편집위원들도 학과 출범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후문이다.

이쯤되면 중앙대 문화연구학과의 ‘정체’가 보다 분명해진다. <문화과학>은 1992년 과학적 문화이론과 진보적 문화정치를 기치로 창간됐다. 계급론과 국가론 위주였던 진보 진영에 문화의 의미를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유럽 사회과학계의 최신 이론이 <문화과학>을 통해 밀려 들어왔다. 본격적인 대중문화비평이 등장하고 영상 예술에 대한 관심도 폭증했다. <문화과학> 동인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95년 ‘서울문화이론연구소’를 만들고, 99년에는 국내 최초의 문화분야 시민운동단체인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출범도 주도했다. 중앙대 문화연구학과는 10여년에 걸친 노력의 한 결실이다.

사실 중앙대 문화연구학과보다 앞서 길을 닦은 곳이 있긴 하다. 지난 2001년 조한혜정·김현미 교수의 주도로 연세대에 문화학 협동과정이 생겼다. 그러나 문화와 젠더(사회적 성·性)를 결합했다는 점에서 중앙대와 다르다. 협동과정의 영문 명칭도 ‘문화와 젠더 연구(Culture and Gender Studies)’다. 아무래도 젠더에 대한 관심이 강하다.

반면 중앙대 문화연구학과는 이 분야를 개척한 영국 버밍엄대 현대문화연구소(CCCS) 모델을 그대로 빌려 왔다. 1964년 만들어진 이 연구소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대안 학문이자 독립적 학문 분야로 자리잡게 한 주역이다. 영국의 문화연구는 독일의 비판이론, 프랑스의 구조주의·탈구조주의와 함께 현대 학문 세계를 이끄는 중요한 이론전통이다.

김누리 교수는 “특정 국가·민족의 문화가 아닌, 보편적 문화이론을 다루면서도 비판적 문제의식을 견지하는 버밍엄대 문화연구의 전통을 이어받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문화이론과 문화기획을 두 축으로 삼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이론을 모색하는 동시에, 현실 문화 지형에서 직접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화연구는 태생적으로 기왕의 인문학·사회과학과 ‘갈등’할 수밖에 없다. 기존 학문의 성과를 흡수하는 동시에 이를 강력히 비판하는 진앙지가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문화연구 스스로는 끝없이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학문적 경쟁력을 높여왔다. 적어도 영국 등 서구의 사례는 학문으로서의 ‘문화연구’가 한국의 인문학 위기에 대한 새로운 탈출구가 될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대학원 관련 문의는 (02)820-6386 또는 caucs.cau.ac.kr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문화연구는

1960년대 영국서 태동 한국선 90년대초 본격화 아직은 대중문화 재평가 수준

‘문화연구’는 거대담론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했다. 특히 경제결정론, 계급환원론, 목적론적 역사관 등이 특징적인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이 핵심을 이룬다.

그 결과, 학문적 관심이 주변·일상·소수 등으로 옮겨갔고, 이 영역을 아우르는 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론적 연구가 시작됐다. 효시는 1964년 만들어진 영국 버밍엄대 현대문화연구소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스튜어트 홀, 리처드 호가트 등 좌파 비평가 및 연구자들이 주축을 이뤘다. 이 연구소는 처음부터 역사·철학·사회학·인류학·문학비평 등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문화연구는 마르크스는 물론 알튀세르와 그람시,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의 성과를 차용했다. 특정 문화 텍스트에 대한 비평을 넘어 문화생산-분배-수용 과정을 둘러싼 모든 문제로 연구 영역을 넓혀갔다. 이때문에 탈구조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식민주의 등 최신 이론이 문화연구 안에 녹아 있다. 각 이론에 대한 쟁점을 촉발하는 동력도 문화연구 분야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의 문화연구는 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부분은 영국의 문화연구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대중음악, 영화, 광고 등 각종 문화 텍스트에 대한 비평이 ‘문화정치’의 이름으로 시작됐다. 70년대 문예운동, 80년대 민중문화운동 등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영화 등 대중문화 영역으로 몰려간 것도 이때였다. 이 에너지는 최근 한국 대중문화 역량의 급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대적으로 이론적 모색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문화연구’ 열풍은 대중문화와 일상세계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영국의 문화연구가 모든 이론적 모색을 아우르는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있다면, 한국의 문화연구는 이론적 가능성을 다른 학문분야에 제공만 하고 스스로 매말라가는 옹달샘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김누리 교수는 “자본과 문화가 만나는 자리에 ‘미래’가 있다”며 “여기에 천착하는 본격적인 문화연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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