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3 16:03
수정 : 2006.02.06 17:22
역사로 보는 한주
2003년 10월15일 오전 9시 중국의 첫 유인 우주선 ‘선저우 5호’가 간쑤성 주취앤 위성발사기지에서 발사됐다. 대륙간탄도 미사일(ICBM) ‘동풍’을 개량한 ‘장정 2F’ 로켓에 실린 선저우 5호는 고도 343㎞의 원궤도를 약 21시간에 걸쳐 14 바퀴 돈 뒤 다음날인 16일 오전 6시23분 나이멍구 자치구 초원지대에 안착했다. 이 우주선에 탄 당시 38살의 공군조종사(중령) 출신 양리웨이는 무사귀환해 국민적 영웅이 됐다.
중국 제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의 국가주석 취임에 맞춘 이 거사는 중국을 들뜨게 하고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선저우(神舟=신의 배)는 ‘신의 땅’을 의미하는 神州와도 발음이 같다. 그때까지 지구 바깥으로 나간 우주인을 배출한 나라는 26개국에 이르렀으나 자국 로켓에 자국 우주인을 실어보내는 자력 우주비행에 성공한 나라로는 소련(러시아), 미국에 이어 중국이 42년만에 3번째 나라가 됐다. 선저우 5호 발사 성공은 1964년 10월16일의 중국 첫 원자폭탄 실험, 67년 6월17일의 첫 수소폭탄 실험 성공만큼이나 의미있고 영광스러운 업적으로 자체 평가됐다.
일본의 충격은 컸다. 중국이 세계 5번째로 장정 로켓에 첫 인공위성 ‘동방홍’을 실어 쏘아올리는 데 성공한 것은 70년 4월24일 일이었으나 일본은 그보다 빠른 그해 2월11일 첫 자국산 인공위성 ‘오스미’를 쏘아올렸다. 그러나 중국보다 한수 위라고 자부했던 일본은 99년 11월 H2 로켓 8호기 발사에 실패한 데 이어 선저우 5호가 올라간 뒤인 2003년 11월29일 개량형인 H2A 무인로켓 6호기 발사까지 실패하는 등 잇따라 3차례 연속 우주로켓 발사에 실패해 충격에 휩싸였다.
후속 2인승 선저우 6호 발사에 뒤이어 중국은 앞으로 10년 안에 독자의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고 달 유인탐사 및 행성탐사를 실시하는 등 러시아와 유럽을 따라잡는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노련한 미국 기자 테드 피시먼의 <차이나 주식회사>(정준희 옮김·김영사 펴냄)는 15억 인구대국 중국의 전례없는 ‘자본주의 대장정’이 몰고온 엄청난 변화에 대한 서방쪽의 경이와 공포, 절망과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다. 선저우 계획이 상징하는 중국의 우주개발 도전과 성과는 그런 극적인 변화 위에 서 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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