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참칭하는 ‘수구 향군’에 대항해 깃발 든 예비역 준장
“빨갱이”라 비난받지만 베트남전 자원한 자칭 ‘건전보수’
이라크 파병 반대하고 친미·독재 찌든 군대 혁파 외쳐
이재현의 인물로 세상읽기/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공동대표
내가 어렸을 때 감명깊게 읽은 책 중에 이원등 상사의 전기가 있다. 책 이름이 뭔지 누가 지었는지는 전혀 기억할 수 없지만, ‘국민’학교 저학년 때에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이원등 상사는 1966년에 공수특전단 고공 낙하훈련 중에 시속 150마일로 하강하던 도중에 동료의 낙하산이 기능 고장을 일으킨 것을 보고는 공중 이동해서 전우의 파일럿슈트를 당겨서 주낙하산을 개방시켜주고 나서 자신은 한강 얼음 위로 추락해버렸다.
그의 전우애와 희생정신을 본받기 위해서 세운 동상이 한강 노들섬 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데, 추모곡 <하늘에 핀 꽃>의 가사는 이렇다. “하늘을 내 집 삼아 연마한 기술/ 공수단의 자랑은 이것이었다/ 전우의 낙하산을 펴주고 나서/ 유성처럼 사라져간 이원등 상사/ 그대는 하늘에 핀 한 떨기의 꽃/ 길이길이 향기롭게 피어 있어라” 좋은 노래다. 사고 당시 계급은 중사였는데 순직한 다음에 상사로 추서되었다. 어린 ‘국민’이었던 내게 이원등 상사의 거룩한 희생이 준 감동은 너무 강렬한 것이어서, 만약에 내 몸뚱아리 하드웨어의 ‘스펙’, 그러니까 체격이나 체력 등과 같은 ‘제원’이 더 뛰어났더라면 지금 내가 직업군인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원등 상사의 살신성인
하지만 더 커서 우리 현대사를 공부하면서는 군대와 군인에 대해서 전혀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극소수 정치군인들이 주도해서 저지른 온갖 악행과 만행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그러한 강렬한 기억의 이미지를 대체해버렸다. 군대와 군인에 관한 서로 상반된 이미지들 사이에서 아주 빠른 ‘디졸브’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대학 강의시간에는 학생들에게 “한국 군대는 사람을 망가뜨린다, 어떻게든 군대에 가지 말고 빠져라, 그리고 일단 군대에 끌려가면 하루라도 빨리 탈영해라”는 식으로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생각을 바꾸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평화재향군인회(약칭 평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보도된 대로, 평군의 상임 공동대표로는 표명렬 예비역 준장과 한국전쟁 참전 경력의 74살 노익장이자 부산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상임의장인 김상찬 선생(육군 중사 예편)이 뽑혔고, 장만준 예비역부사관협의회장 등을 포함해서 11명의 공동대표단도 구성되었다.
표명렬 대표는 수락 연설을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안보라는 것은 군사정권 세력들이 안보라는 이름으로 협박해 와서 국민들에게 피해의식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안보 하면 생명과 목숨을 바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성스럽고 아름다운 그런 것으로 국민 가슴속에 스며들도록 만들자”고 했다. 민변 대표인 이석태 변호사가 축사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제는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군에서 이뤄낼 수 있고 국가의 방위 임무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정규 육사 출신으로 정훈감을 지낸 표명렬 대표는 평군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번 제명을 당해야만 했다. 평군의 창립으로 그 정당성이 흔들리게 된 대한민국재향군인회(약칭 향군)로부터는 물론이고,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와 육사 18회 동기회, 그리고 육사 총동창회와 정훈동지회 등에서도 제명을 당했다.
퇴역 군인이란 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베테랑(veteran)이다. 불어와 독어에도 같은 형태와 의미의 단어가 있다. 퇴역 군인이란 뜻 말고도 베테랑은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기능이나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베테랑이란 말은 영어 ‘old'에 해당하는 라틴어 ’veteris'에서 나온 것이고, 또 이 라틴어 단어의 어근은 고대 인도유럽어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 뜻은 영어 ‘year'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오랜 세월을 보내고 나이 먹은 사람‘이 바로 베테랑의 어원이다.
해방 직후 국방경비대는 친일 경력을 가진 고급 장교의 도피처이자 출세의 새로운 지름길이었다. 또 군사영어학교는 반민족적 친미 사대주의 성향 장교들의 양성소였다. 그 후 육군사관학교가 만들어졌지만 박정희 체제 아래에서 육사 출신 고급장교들의 상당수는 정치군인이 되고 말았다. 5.16, 12.12, 광주항쟁 진압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 소수의 정치 군인들은 현역 때에는 쿠데타나 민간인 학살의 베테랑 노릇을 했고, 또 퇴역해서는 대사라든가 국영기업체의 임원자리에 앉고는 했다.
“안보 목적은 민족과 국민 평화”
힘없고 연줄 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사병으로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일선에서 총알받이 노릇을 해야 했고, 퇴역을 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향군 구성원으로 이름이 올라가는 것뿐이다. 한편, 더 이상 진급을 하지 못한 채 퇴역을 하게 된 비육사 출신의 장교들이나 한곳에 붙박이로 박혀 장기 복무를 하다가 사회에 나온 부사관 출신의 역전 노장들은 빠르게 바뀌어 가는 사회현실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대개들 아주 심하게 고생을 했다. 사업을 벌였다가는 아주 쉽게 망하기 일쑤였고 또는 사기꾼들을 만나서는 어렵게 모은 작은 재산을 금방 날리기 마련이었다. 세상이 다 아는 아주 흔해 빠진 얘기다.
향군은 퇴역군인들의 사회 적응이나 복지에 전혀 힘을 쓰지도 못했고 ‘베테랑’들의 경험과 기능을 활용해서 사회에 이바지하는 일을 하지도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오로지 향군 상층부를 구성하는 소수 퇴역 장성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뒷받침하는 일만을 해 왔다. 향군 등이 평군 창립과 관련해서 표명렬 대표를 제명한 것은 그 성격상 아주 당연한 일이다. 향군 측은 인신공격도 서슴치 않고 있는데 표명렬 대표의 부친이 빨치산이었다는 게 그 요지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이 자신의 가족사를 다룬 책과 표명렬 대표의 언론 인터뷰에 의하면, 표정훈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표명렬 대표의 부친인 표문학씨는 남로당 전남도당 주요 간부로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었다. 표문학씨는 일제 때 중앙고보에 다니던 중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했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퇴학을 당한 적이 있고 6.25전쟁이 나자 전남지역 노동조합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다. 표문학씨는 인민군이 퇴각하자 백두대간을 따라 월북길에 올랐다가는 붙잡혀서 대전형무소로 이감되던 중에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미군 고문관 역할을 하게 되면서 겨우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고향에 내려와 농사지으며 살았다고 한다. 전쟁통에 기록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서 표명렬 대표가 육사를 진학하는 데에 표문학씨의 과거가 족쇄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빨갱이’면 당연히 아들도 ‘빨갱이’가 되기 마련”이라는 비열한 인신공격 논리대로라고 한다면, 향군 측은 무엇보다 이문열씨에 대해서도 소위 사상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하며, 그러한 이문열씨의 글을 싣는 보수신문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난을 해야 한다. 이런 논리에서는, 겉으로는 보수 우익인 척 하고 있지만 실은 ‘빨갱이 피’를 이어받은 이문열씨야말로 내놓고 극우세력을 비판하는 표명렬 대표보다 훨씬 더 위험한 법이다.
‘건전 보수’를 자처하는 표명렬 대표의 생각은 참 독특하다. 자신이야말로 참다운 보수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육사 출신인 것이 자랑스럽고 또 평생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 베트남전에 자원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참다운 보수주의자라면 정권이 마음에 안들어도 정부 정책에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년에 수백억씩의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향군은 미국 성조기가 휘날리는 반정부 시위 현장에 참가해서 반국가적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보수주의자 표명렬 대표로서는 이러한 처사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 통하는 ‘보수’ 만나 반가워
나 같은 자유주의자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세상에,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가 있다니. 또, 표명렬 대표의 지론은 한국군의 역사적 전통은 광복군에서 찾아야 하고, 군 개혁은 육사교육의 개혁과 기무사의 개혁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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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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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군대문화를 혁파해야 하고, 단지 국방비를 늘리는 게 자주 국방이 결코 아니며, 국가 안보의 궁극적 목적은 민족과 국민의 평화라는 것이다. 이런 보수주의 세력이라고 하면 얼마든지 함께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이원등 상사의 거룩한 삶에 사로잡혀 있던 순진한 어린 국민으로서 열심히 ‘맹호부대’ 노래를 부르던 잃어버린 나를 되찾아주기까지 하니 그 반가움은 더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만세 삼창을 해야겠다. 이원등 만세, 표명렬 만세, 재향군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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