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3 16:21
수정 : 2006.02.2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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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위대한 요기 밀라레파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마음의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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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이책
정신세계사와의 인연의 고리는 ‘죽음’이었다. 불온의 기운이 가득한 20대 끝자락에서 붙들린 <티벳 死者(사자)의 서>, 죽음의 순간에 단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해탈에 이르는 티벳 최고의 경전이라는데, 도대체 티벳과 사자가 무엇이건대, 살아서 쩔쩔매는 우리의 시선을 간구하는가. 탐문하듯 책을 독파했고, 그 야릇한 교훈에 입입어 새로운 동력을 얻은 기억이 분명한데, 한 시절을 건너 그 맥을 잇는 책을 내 손으로 만들게 되었으니, 사뭇 인연 깊은 책이 바로 <티벳의 위대한 요기 밀라레파>다.
티벳 불교를 알리기 위해 기획된 네 권의 책 가운데 대표도서가 <티벳 死者의 서>. 나머지 세 권은 <밀라레파> <티벳 밀교 요가> <티벳 해탈의 서>. 10년 동안 몇 년 터울을 두고 모두 번역 출간되었는데, 마지막으로 가장 큰 성원과 기대 속에 출간된 책이 바로 <밀라레파>다. 가장 쓸쓸한 뒷모습을 남긴 책이이기도 하다.
석가모니를 잇는 위대한 불교 성자로 추앙받으며 구도자들에게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보다도 더 유명한 티벳의 성자. 그쪽 지역에서는 지식인과 문맹자, 다섯 살 꼬마와 칠순 노파가 한무릎이 되어 경외한다는 밀라레파. 물질세계의 허망함을 설파하며 참된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마음으로 세계를 정복한 한 초인의 삶을 그린 책일진대.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흑마술을 배워 가족을 괴롭힌 친척들에게 복수하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자신의 죄업을 뉘우치고 당시 태동중이었던 티벳의 카귀파불교에 입문하여 깨달음의 길을 간 밀라레파의 삶은 ‘죽어야 할 인간이 거둘 수 있는 모든 위대한 성취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에 도달했다 일컬어진다. 그 강렬한 울림이 어찌 저 혼자만의 메아리가 되었는지.
사실 정신세계사 책들은 온통 시기상조, 구태의연하다. 정형화된 독자들의 성향과는 무관하게, 아무 의심 없이 지지부진한 독자들 삶의 뒷덜미를 잡아채, 진정한 삶의 의미를 묻는 바, 그 질문에 답하기 귀찮은 이들에게는 그저 낯설고 생소한, 혹은 너무 뻔한.
생각해보자. 히말라야의 혹독한 기후 속에서 세속적인 의문들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얇은 무명천 한 조각만 걸친채 말린 보리 한 움큼과 초근목피, 이따금 경건한 신도들이 가져온 약간의 야크 젖에 의존해 살아가는 은자들,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부끄러움이다. 밀라레파의 삶은 경전과 전통 위주의 신앙에 묶이지 않고 체험에 의한 지식을 구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즉, 설원의 땅 티벳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강철의 정신, 어쩌면 내 안의 부끄러움을 일깨워 세상의 불의, 삶의 모순과 맞서라는 커다란 채찍인 것이다.
정신세계사는 영성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질책과 격려가 집요한 곳이다. 다른 출판사에서는 만나기 힘든, 진지한 독자들은 자신들의 진화를 위해 필요한 책을 애타게 갈구한다. 지난 10년 간 이곳저곳에서 떠다니는 밀라레파의 생애담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낼 것을 요구하는 독자들의 성원이 줄기찼기에, 이에 힘입어 기세등등하게 내보인 책이 <밀라레파>다.
어찌되었든 누가 석가를, 예수를 왜 알아야 하느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밀라레파 역시 우리 삶을 개선하는 데 크게 공헌한 성인으로, 그의 삶을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 일은 영원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다만, 그의 공덕에 가장 먼저 눈물 흘린 편집자로서, 하루바삐 가슴 밝은 독자를 만나고 싶을 뿐. 정신세계사 편집장 이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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