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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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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출판전망대
얼마 전 출간된 <책따세와 함께 하는 독서교육>이란 책의 뒤표지에는 “추천도서는 독서교육의 나침반”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실 올해 초에 논란이 됐던 ‘서울시 교육청 추천도서’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라면 나도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을 두고 벌어진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토론을 여러 차례 듣고 나서는 적어도 이 땅에서 추천도서가 ‘해악’이 될 확률이 더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책따세 교사들이 이번에 펴낸 책이나 그들이 선정한 도서는 물론 좋은 책들이다. 다른 어떤 추천도서들보다 객관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학교도서관 사서확보율 3%가 상징하듯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 독서와 학생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진 교사들이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 또한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문제는 책따세를 역할모델로 삼은 모임들이 점차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책따세의 추천도서만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추천한 도서목록이 점차 ‘권력’의 속성을 띠게 되면서 추천목록의 긍정성보다는 부정성이 더 커졌다. 그래서 추천도서가 ‘게으른’ 교사들에게는 ‘실용적 지침’으로 손색이 없을지 몰라도 학생들에게는 이미 작은 ‘폭력’이 되고 있다. 결국 그 추천도서들이 교사사회에서 지지를 받을수록 대부분의 학생들은 책에서 멀어지는 일까지 벌어질 것이다. 아무리 확실한 내용 검토와 ‘임상실험’을 통해 선정된 목록이라 해도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면 이제 그것은 지양돼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그런 추천도서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교사들에게는 충분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교사가 신이 아닌 이상 수많은 임상실험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사들부터 추천목록을 가지고 독서이력철이나 독서능력검정시험을 시행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추천도서는 단지 미봉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추천도서로 열악한 환경을 적당히 무마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충분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학교도서관을 마련하고 그곳에 다양한 책과 잡지, 일간신문, DVD 등의 영상자료, 인터넷 접속을 위한 컴퓨터 등을 폭넓게 구비해 주어야 한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그 책을 읽는 사람의 기분, 주변 환경에 따라 책을 읽은 느낌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그렇게 불규칙적으로 만나는 이질적인 상상력의 결합을 통해 학생들은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교사들은 학생들의 개인차에 맞는 책을 권하면서 토론을 통해 충분한 조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전문사서 교사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은 거꾸로 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내년에 사서교사를 438명 증원하겠다고 신청한 것을 행정자치부는 어이없게도 전원 삭감해 버렸다. 지난 9월30일에는 교사들이 이에 항의해 교육부 후문에서 학교도서관 정상화 및 사서교사 배치 촉구를 위한 결의대회까지 열었다. 그 자리에서 교사들이 결의한 바대로 2006년 사서교사 배치 0명은 결코 있어서도 안 되며 또한 교과교사 및 비교과교사 수준으로 사서교사가 배치돼야 마땅하다. 더 나아가 법에서 규정한 대로 전국의 모든 학교에 사서교사가 1인 이상 배치되는 일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다.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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