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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3 17:07 수정 : 2006.02.06 17:23

임영신/평화운동가·늘봄, 시원, 슬빛 세 아이의 엄마

장남감총은 왜 나쁜가
아이들 답 찾아가다
본질 스스로 깨닫게
깨친만큼 행동하라 채근

나는 이렇게 읽었다/위기철 지음·이희재 그림 ‘무기 팔지 마세요’

아이들이 살인놀이, 혹은 강간놀이를 한다면 두고 볼 부모가 있을까?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계획을 짜고 살해할 흉기를 고르고, 살해방법을 연구하는….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쟁놀이는 누구도 반감을 갖지 않은 채 허용되는게 현실이다. 책 속의 주인공 보미는 그 전쟁놀이 때문에 사는 게 너무 괴롭다. 결국 전쟁놀이에 맞서는 보미의 한판 승부 속에 ‘전쟁놀이’의 본질에 관한 놀라운 통찰이 드러난다.

초등학교 5학년인 보미는, 교실에서 비비탄으로 총싸움을 하던 경민이의 총에 이마를 맞고 사과를 받아내려다 남자아이들과 대치하게 된다. 더구나 그날 우연히 발견된 비비탄 총알에 선생님은 총알 주인을 찾는 수사(?)를 시작했다. 보미의 말 한마디는 본의 아니게 고자질처럼 되어버려 그날 총을 가져온 아이들 12명 모두 총을 빼앗기게 되었다. 혼쭐이 난 남자 아이들은 그날 이후 앙갚음으로 학교 안에서는 왕따를, 학교 밖에서는 비비탄 공격을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불안에 시달리던 보미는 결국 학교 밖에서도 총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할 방법을 찾다가 남자 아이 패거리 중 하나인 진만이 엄마를 찾아간다.

“아이들에게 장난감 총을 사주지 않았으면 해요”라는 보미의 요청에 진만이 어머니는 보미에게 좀더 설득력 있는 논리를 요구한다. “왜 장난감 총이 나쁜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이유로 장난감 총을 안 사주는 것이 합당한지… 야구공 같은 도구도 남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데 그 때문에 야구공을 안 사주어야 하는지….” 그 물음에 보미는 ‘나를 괴롭히는 전쟁 장난감’에서 ‘전쟁 장난감’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무거워진다. 그리고 친구 민경에게 도움을 청한다. 자신들의 주장을 진만이 어머니에게 입증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던 아이들은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들을 발견한다. 지난 10년간 2백만명의 아이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6백만명의 아이들이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을, 30만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소년병으로 징집되어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을.

결국 아이들은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를 포스터로 만들어 교문에 붙이는 한편, 전쟁놀잇감 수거함을 설치한다. 어느새 평화모임까지 만들게 된 아이들은 장난감 무기를 팔았던 학교 주변 문방구들을 방문하는 평화행진을 시작한다. 아이들의 현수막에 쓰인 한 문장이 바로 책의 제목인 ‘무기 팔지 마세요’다.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미의 피켓팅을 신문에서 본 미국 어린이 제니의 자각을 통해 미국의 어머니들은 총기판매규제를 위한 입법활동에까지 나서게 된다.

이 책의 중심 이야기는 보미와 민경이가 ‘전쟁장난감은 왜 나쁜가?’라는 자신들의 물음을 끝까지 좇아가는 여정이다. 단지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 아이들의 전쟁 장난감이 싫었던 보미는 결국 지금 ‘어른들의 합법적 전쟁’이 아이들을 죽이고 있고, 무고한 생명들을 해치는 나쁜 행동이기 때문에 전쟁은 놀이가 될 수 없다는 본질적 자각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은 재미있다. 아이들과 같이 읽으며 몇 번이나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재미 속에는 날카로움이 있다. 책 속의 누구도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어떤 아이도 자기가 시작한 일에 주도적 리더가 되려고 자리다툼을 하지 않는다. 일을 크게 만들기 위해 야심을 펼치지 않는다. 누군가로부터 들은 가르침이 아니라 스스로 깨친 ‘자각’이 그 아이들을 움직이게 할 뿐이다. 아이들의 자각에서 시작된 무기반대운동이 백만 명의 어머니들을 광장으로 나서게 하며 ‘총기규제법안’ 통과 시위를 하는 장면에서 이르면 온 몸에 소름마저 돋는다.


세 번째 읽은 뒤 책장을 덮으며 어쩌면 이 책은 ‘전쟁놀이가 나쁘다’라는 명제에 대한 논증이 아니라 ‘자각하라, 자각한 만큼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건네기 위해 쓰여진 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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