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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3 17:12 수정 : 2006.02.06 17:24

말글찻집

날씨·태풍기사를 기사의 ‘본보기’로 친다. 기사를 얽는 ‘여섯종자’(언제·어디서·누가·무엇을·왜·어떻게)를 두루 갖춰 쓰는 까닭이다. 태풍은 영향력이 큰데다 움직이는 방향을 잡기 어렵다. 그 움직임에 따라 제목이나 기사 크기도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5일 낮 제주부터 14호 태풍 ‘나비’의 영향을 받기 시작해 6~7일 동해안을 중심으로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4일 “오후 3시 현재 일본 오키나와 동쪽 390㎞ 부근 해상에서 시속 20㎞로 북북서진하고 있는 대형 태풍 나비의 간접 영향으로 5일 낮부터 제주와 남해·동해안에 바람이 점차 강해지겠다”며 “제주 남쪽 해상에는 이날 밤 태풍주의보가 발효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나비의 영향으로 5일 오후에는 경북과 전남북, 밤에는 중부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나비는 6일 낮 일본 규슈 지방을 거쳐 7일 오전 9시쯤 부산 동북동쪽 약 160㎞ 부근 해상을 지난 뒤 동해상으로 빠져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거의 군더더기가 없는데, 이 정도면 한층 여유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태풍은 비껴 가는가, 비켜 가는가? 비껴 가기도 하고 비켜 가기도 한다. 그 진로나 궤적을 보아 우리나라에 상륙하지 않고 옆으로 지나갔을 때 대체로 ‘비껴 갔다’고 말한다. 곧, ‘비스듬히 스쳐 지나갔을 때’ 쓰는 말이다.

‘비켜 가다’는 좀 적극적인 표현이다. 바람이나 태풍도 기압 차이에 따라 움직이므로 사람이나 동물처럼 의식적으로 방해물을 ‘비켜서 간다’고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태풍에 잘 어울리는 활유적 표현이다.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고 일본 규슈 지방을 거쳐 현해탄 쪽으로 비껴 가겠다”면 한반도 시각에서는 비스듬히 스쳐 지나간 것이므로 ‘비껴 간’ 것이다.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서정주·동천)에 극히 자연스런 표현이 보인다.

‘비끼다’는 자동사, ‘비키다’는 타동사적 쓰임이 강한데, ‘비껴 가다/ 비켜 가다’도 그 바탕말되는 말에 견줘 쓰면 구별이 쉽다. “비켜 가다, 비켜 나다, 비켜 서다, 비켜 앉다”로 띄어쓰는 것도 말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도 일반에서 뒤섞어 쓰는 것은, 이 말들이 아직 서로 영역을 넘나들며 분화하는 단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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