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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견문록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이창신 옮김. 이마고 펴냄. 1만7000원 |
커피 역사 좇아 지구 3분의 2 훑은 견문록
수천년 전 에디오피아선 커피콩 따먹어
유럽에 건너와 카페를 낳았고
그곳서 꽃핀 토론 문화는
민주주의·언론·금융 꽃피워
“20C 철학사조까지 커피에서 비롯돼”
깊어가는 이 가을, 커피 한잔 어떠신가? 모카, 카푸치노, 아니면 아메리카노?
근데, 사람들은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을까? 한번쯤 이런 의문이 들지는 않겠는가. 개중에 정색하고 커피의 역사를 찾아보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누군가 옛 ‘커피의 길’을 따라가면서 진실을 캐보겠다며 짐을 꾸린다면 미친 놈 취급하지 않을 텐가? 스튜어트 리 앨런이란 사내가 꼭 그짝이다.
커피향 풍기며 종교의식 거행
그가 발품으로 남긴 기록 <커피견문록>(이마고 펴냄)의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커피는 본디 마신 게 아니라 먹었다. 지금의 이디오피아 왈로족이 처음으로 커피를 먹은 오로모족의 후손이다. 15000~3000년전 케파의 밀림지대, 라이벌 봉가족의 포로가 된 오로모족은 고지대인 하레르 노예시장에서 팔려나갔다. 이들이 가져온 동그랗고 거친 로부스타 원두는 고지대에 적응해 길쭉하고 향이 풍부한 아라비카 원두가 됐다. 왈로족은 주술능력이 뛰어나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최근까지도 주술사의 무덤에 커피나무를 심는 풍습이 있던 것으로 미루어 커피가 주술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하레르의 원두는 동쪽으로 홍해까지 나간 뒤 오늘날 모카커피의 고향으로 알려진 예멘의 항구도시 알모카에 도착했다. 1200년경 알샤드힐리라는 이슬람 수행자가 처음으로 커피를 끓였다고 추정되는 곳이 바로 이곳. 커피무역으로 번성한 이곳은 궁전이 줄지어 있었고 왕자들은 황금방석에 앉아 수많은 노예를 부렸다. 수피교의 한 분파인 샤드힐리 추종자들은 아라비아 반도를 돌면서 커피향을 풍기며 종교의식을 거행했다. 터키가 예멘을 정복한 1400년대에 이르러 모카에서 나온 커피가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졌다. 이야기는 진지하기가 모카커피 맛이다.
예멘 출신의 시바 여왕이 솔로몬 왕한테 건넨 향료 가운데 커피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솔로몬이 그날 밤 여왕을 덮쳤고 이로써 콩이 최음제였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게 유일한 증거. 터키의 오스만 제국 술탄 가운데 가장 악독했다는 무라드 4세(1612~1640). 미복으로 시내를 돌다가 카페에서 정부를 비난하는 광경을 보고 커피와 물담배를 금지시켰다. 이를 어겨 목이 잘린 사람이 10만명이라나. 이로 인해 커피상인들이 국외로 눈돌려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로 커피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1683년 30만 터키군이 오스트리아 빈을 공격했다가 패퇴하면서 낙타 2만5000마리도 버렸다는데, 등에 실린 10여개의 원두콩 자루가 빈에 최초의 카페를 여는 재료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유럽의 아침식사 ‘크루아상과 커피 한잔’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밤늦게 일하던 제빵업자가 터키인들이 땅굴을 파는 소리를 듣고 이를 시 당국에 알렸고 이들은 나중에 터키 국기에 나오는 초승달 모양을 본뜬 ‘피처’ 빵을 만들어 자신의 공적을 선전한 바, 이 빵을 커피와 함께 먹는 것이 빈의 아침식사가 되었다. 한세기 뒤. 빈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와 결혼하면서 향수병에 걸린 그가 프랑스 제빵업자들에게 피처 만드는 법을 가르쳤고 새롭게 붙여진 이름이 ‘초승달’이라는 뜻의 ‘르 크루아상’이다. ‘크루아상과 커피한잔’ 시작된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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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페의 법칙. “나쁜 커피는 팽창주의 제국주의, 좋은 커피는 평화와 관용.” 유럽에서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였던 독일은 1차세계대전을 일으켰고 히틀러는 카페가 아닌 술집에서 추종자를 모았다. 폭탄제조술이 뛰어난 미국의 커피맛은 지독했는데 맛좋은 커피점 스타벅스가 생긴 이래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나. 그림은 커피를 나르는 아라비아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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