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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3 17:33 수정 : 2006.02.06 17:24

세계를 삼킨 숫자 이야기
코언 지음. 김명남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1만1000원

이스라엘왕 다윗이 호구조사를 했다. 그는 야훼의 벌을 받아 그의 백성 7만명이 사흘만에 역병으로 죽었다. 무슨 죄인지는 성경에 없다. 그 뒤 인구조사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1790년 미국의 인구센서스에서 비로소 주박이 풀렸다. 결과물은 기밀로 취급되었다. 군용인력과 관련되기 때문.

<세계를 삼킨 숫자 이야기>(생각의 나무 펴냄)는 통계에 관한 역사이야기다. 지은이 아이 버나드 코언(1914~2003)은 하버드대 석좌교수를 지낸 1세대 과학사가. 뉴턴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가 죽기 2주전인 2003년 6월에 탈고했다.

최초의 인구통계적 계산은 요상하게도 정자의 크기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대구 어백 속에 든 정충의 수(1500억)는 지구가 지탱할 수 있는 인구수보다 훨씬 크다.” 안톤 반 레벤후크(1632~1723)다.

흑사병이 유행하던 1603년. 전염이 악화하나, 진정되나를 알아보기 위해, 실제 목적은 왕실이 피난 갈지말지를 결정하기 위해 사망자 표가 만들어졌다. 제대로 된 통계분석은 그라운트가 쓴 <사망표에 관한 자연적이고 정치적인 제고찰>(1662년)이 처음. ‘일상적인 사인의 비중은 일정하나 전염병 사망 비중은 들쭉날쭉하다’는 요즘으로서는 별 것 아닌 사실의 발견. 뒤를 이어 윌리엄 페티(1623~1687)는 “모든 정부 활동이 수치 자료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학문이 별 건가.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1694~1778)는 통계로 돈을 벌었다. 파리시에서 발행한 복권의 당첨 지급금이 판매수익의 총합보다 큰 점에 착안해 복권을 싹쓸이함으로써 한재산 챙겼다는 것.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은 맬서스의 <인구론> 개정판보다 50년 앞서 20년 혹은 25년마다 인구가 2배씩 증가하리라고 단언했다. 더 많은 영국인이 신대륙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통계치를 들어 천연두 예방주사를 설득한 것도 유명하다.

통계자료 분석에 확률이론이 본격 적용되기는 아돌프 케틀레이(1796~1874)부터. 그는 범죄, 자살, 결혼 분야에서 일정한 규칙성을 끌어냈다. 감옥, 수갑, 교수형틀 예산을 고정시킬 수 있게 되었고 “정치가가 어떤 법률이 필요한지 결정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도구는 통계치뿐”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했다.

지은이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에게 마지막 챕터를 할애한다. 야전병원에서의 임상통계로써 공중보건의 중요성을 일깨운 공로를 인정한 것. 그의 위생개선 권고를 받아들여 군병원 및 막사를 개선한 결과 병영내 사망률은 뚝 떨어진다. “통계를 통해 인류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에 지은이도 동의한다는 암시로 읽힌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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