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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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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쪽 장편으로 개작
청계천 양면성 보여주기와
단순 시점으로 ‘거품 제어’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박태원의 <천변풍경> 다시 읽기
1936년에 기고하고 이듬해 탈고, 그 이듬해에 개고하여 거의 5백쪽에 이르는 박태원(1909~90)의 <천변풍경>을 단숨에 읽기엔 조금은 벅차오. 그렇기는 하나, 같은 작가의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을 읽기보다는 훨씬 수월하오. 그런 까닭의 하나로 시점 문제를 들 수 있소.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사물 관찰자는 서울 태생이며 유복한 집안의 막내이자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대학노트를 끼고 지팡이까지 든 미혼 청년이오. 일본 근대의 풍물을 보아버린데다 근대문학이라는 기묘한 놀이까지 하는 그런 인간의 내면이란 얼마나 복잡한가. 독자 쪽이 따라잡기엔 너무 앞서가고 있었던 것. 당시엔 <메밀꽃 필 무렵>(1936)의 독자층이 대부분이었던 까닭. ‘얼금뱅이요 왼손잡이’라 함으로써 주인공의 뒤틀린 어두운 일생을 제시해 놓고도 모자라,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들 숫기도 없었으나…”라 하여 작가 쪽이 나서서 설명을 죄다 해버리지요. 그 때문에 극적인 감동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체홉이나 헤밍웨이의 극적인 수법에 비해 보면 이 점이 선명해지오. 서구문학을 전공한 작가가 이 사실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겠지요. 작가는 아마도 독자의 수준을 고려했지 않았을까. 일종의 사다리 같은 장치가 필요했던 것. 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감행한 것이 이상의 <날개>(1936)와 박태원의 중편 <천변풍경>이었소. <메밀꽃 필 무렵>의 독자 쪽에서 볼 땐 난해할 수밖에. 이 난해성을 해명한 것은 신식 서구 무기인 주지주의를 익힌 당대 최고 평론가 최재서였소. <리얼리즘의 확대와 심화>(1936)가 그것. 어째서 박태원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중편 <천변풍경>을 5백 쪽에 이르는 장편으로 개작했을까. 거기까지는 알기 어렵소. 알 수 있는 것은 개작으로 말미암아 작품이 크게 확산되어 거품으로 가득찼다는 사실이오. 이른봄에서 시작, 청계천 주변에 벌어진 이런저런 현상과 떠도는 풍문의 일 년간을 채우다 보니 거품으로 가득찰 수밖에요. ‘바로 거품, 그것이 참 주제다’라고는, 근대소설을 문제삼는 한 아무리 뱃심 있는 작가라도 감히 내세울 수 없지요.
어떻게 해야 이 거품을 어느 수준에서 제어할 수 있을까. 이 물음만큼 작가를 괴롭힌 것은 없었을 터. 어째서? 그는 제일급의 기교주의자이니까. 그가 내세운 설계도는 다음 두 가지. 첫째, 청계천의 양면성 보여주기. 청계천엔 유료 빨래터가 있다는 것. 복개될지도 모른다는 풍문에 떨면서도 당국에 세금을 내면서 박첨지가 경영하는 빨래터 주변에는 아마도 맑은 샘물이 흘렀겠지요. 동시에 청계천은 ‘똥물이 흐르는 곳’이라는 점. 샘물과 똥물이 공존함을 보여주고자 함이 작가의 의도인 셈. 둘째, 이 설계도를 가장 효과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시점 제시. 이발소 조수인 소년 재봉이의 시선이 그것. 풍문이란 이름의 거품을 깡그리 걷어낸다면 남는 것은 소년의 시점뿐. 단순하면서도 순진한 소년의 시선이기에 난해성은 사라질 수밖에. 소년의 시선이기에 비약해봤자 거기가 거기일 뿐. 그렇다면 소년 재봉의 시선에 비친 청계천의 그다운 참모습이란 무엇일까. 참주제가 걸린 대목. 당초부터 소년이 제일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다름 아닌 포목집 주인의 머리에 날아갈 듯 살짝 얹힌 멋들어진 중절모입니다. 제발 저 신사의 중절모가 바람에 날려 청계천 똥물 속에 처박히기를 밤낮 바라고 있었던 것. 날아갈 듯한 저 천변 바닥 포목점 주인의 모자가 진흙탕에 떨어진다면 얼마나 신바람나는 일일까. 얼마나 멋진 일일까. 멋진 중절모 신사 되기가 소년의 꿈이었으니까. 이 ‘멋지다’가 바로 모더니스트 박태원의 본질이 깃든 곳. 모자가 마침내 개천 똥물에 떨어지는 장면으로 작품의 결말을 삼은 것이 그 증거. “상판대기에 불에다 덴 자국이 있는 깍정이놈이 다리 밑에서 뛰어나와 얼른 건졌으나, 시커먼 똥물이 뚝 뚝 떨어지는 것이 코에다 갖다 대보지 않더라도 우선 냄새가 대단할 듯싶다.” 똥물 흐르는 그 중절모를 비뚜름히 쓴 그 깍정이 놈이 제 흥에 겨워 채플린 흉내를 내고 있는 꼴만큼 신나는 구경거리(보여주기)가 달리 있으랴. 이 모더니즘 수법이 대작 <갑오농민전쟁>(1985) 제2부 마지막 장면에 재현되고 있어 인상적입니다. 전봉준의 전주성 입성 장면이 그것. 느끼게 함이 아니라 보여주기로서의 글쓰기였던 것. 청계천이 복원되어 세상이 요란하오. 이번엔 누구의 모자가 떨어질까. 궁금하오. 누구의 모자이든, 물에 젖지 않겠는가. 소년 재봉과 같이 그 장면을 보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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