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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3 18:19 수정 : 2006.02.06 17:26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10대엔 남극과 에베레스트 가기
20대엔 은행털기와 UFO에 잡혀가기
30대엔 호스트바와 식당 차리기
지금은 사기치는 거 안 보는 게 원인데
인공수로인 ‘청계천’을
‘하천’으로 부르는 거 사기 아니냐

세설

1.

다른 애들은 멋진 직업 잘도 읊던데 뭐가 모자란 건지 어릴 적부터 꿈 뭐냔 소리엔 할 말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대신 바라는 바, 소원의 리스트는 살아가며, 나이 대에 따라 유형을 달리하며, 축적되더라.

2.

특정 장소를 가야 해결되는 소원 유형은 주로 10대 때 리스트업 됐다. 그 첫 번째가 남극. 일곱 살 때, 아문젠 전기 읽다 꽂혔다. 그는 일곱 살 때부터 일부러 겨울에도 창문 열고 잤단다. 당장 따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동 위인전 작가의 생구라다. 하지만 난 지금도 겨울에 창 열고 잔다. 아이들 아무 거나 읽히면 평생 고생한다. 남극, 칠레 푼타 아레나스 혹은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에서 크루즈로 갈 수 있다. 교통비 천만 원 대. 소요시간 2주. 20대엔 돈 없어, 30대엔 시간 없어 못 가고 있다. 열 살 때인 77년 고상돈 대원이 최초로 에베레스트 올라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다”. 카. 언젠가 나도 한 번은 꼭 오르리라. 작년 엄홍길 대장이 그러더라. 내 배 보더니 못 간다고. 헬기 타고 가면 안 되냐 했더니 헬기는 6천m 이상 못 간단다. 특수헬기 나올 때까지 접고 있다. 열셋에 아라파트 사진을 신문서 봤다. 팔레스타인. 뮌헨올림픽 이스라엘선수단 학살테러 지도자. 이윤 모른다. 그 순간 그를 만나기로 다짐. 그로부터 13년 후 93년 라빈총리와 평화협정에 사인한 그가 이스라엘 제리코로 돌아왔단 외신을 접하고 그 해 겨울 바로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삼엄한 검문소 몇 통과 후 제리코 도착. 아라파트 집 찾는단 동양인 신기해하며 따라붙는 팔레스타인 꼬마들 달고 그의 집 앞에 섰다. 회백색 이층집. 대문을 약 3분간 바라봤다. 아라파트가 날 만나줄 이유가 없다. 담벼락에 기대 사진 몇 방 찍고 돌아왔다. 그 후 난 그를 대략 만났다, 말한다. 열다섯, <리더스다이제스트>서 커플이 사하라 동반 횡단했단 스토리를 읽다 사하라 추가. 95년, 이집트 쪽 사하라 끝자락에서 모래 한 시간 쯤 밟았다. 자연 극복한 위대한 인간 승리, 이런 건 또 종목이 아닌지라. 그만하고 돌아왔다.

3.

20대 되자, 장소가 아니라 행위가 등록되기 시작했다. 몇 개만 읊자. 먼저, 은행 털기. 어느 날 <내일을 향해 쏴라>를 보다 문뜩 기력 떨어지기 전에 꼭 한 번 해봐야지 혼자 결의. 돈은 3일 이내 돌려준다. 지금도 작전 구상 중. 잡히면 콩밥이니까. 다음, UFO(미확인 비행물체)에 순순히 잡혀가기. 영화 보면 다들 반항하더라. 난 매우 협조적으로 포획당한다는 계획이다. 여행한 나라 수가 30개가 넘어가며 슬슬 들기 시작. 지구인은 충분히 조우했다. 이제 생체실험만 좀 덜 아프게 해준다면 외계인 콜. 이건 어떻게 이쪽에선 연락 방도 없어 마냥 대기 중이다. 지구귀환 불가능해도, 간다. 그러다 30대 되자, 바라는 데 없는 건 직접 만들어야겠단 생각 시작. 두 개만 소개하자. 첫 째, 똥배 호스트 바. 미소년이나 근육맨 말고 배 나온 30-40대 아저씨로만 이뤄진, 나이 상관없이 반말 찍찍해대고 상당히 불친절한, 그러나 지적으로 통쾌한 호스트들의 바. 모두들 외로워 이 지경이다. 서로 위무하며 사는 게 인류공영. 몸은 안 준다. 나가서 지들끼리 눈 맞는 거야, 뭐. 그러다 기력 쇠하기 시작하면, 그땐 식당주인이다. 메뉴는 내가 정한다. 손님은 뭘 먹는지도 모르고 예약만. 싫음 꺼지고. 우연히 옆집 사는 이웃사촌 관심 없다. 시비 가리는 토론도 싫다. 열받는 것과 흥분되는 것이 공유되는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수다 떨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에 영 관련 없이 늙어가고 싶다.

4.

30 중반이 넘어서자, 이제는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보기 싫고 하기 싫은 일 목록이 등재되기 시작한다. 하기 싫은 일 리스트 길다만, 특히 각종 공중도덕 레벨의 규범들, 매우, 잘, 안 지키기 시작한다. 건널목으로 안 건너고 휴지 같은 거 안 줍는다. 줍기는커녕 손님 여러분 기죽어 달라며 반짝거리는 특급호텔 대리석 바닥에도 휴지 막 버린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면, 나 하나쯤이야, 라고 뻔뻔하게 답해준다. 안 보고 싶은 거 목록 길이도 못지않다만, 특히 사기치는 거 좀 안 봤음 하는 게 큰 원이다. 담배 값 인상 국민건강 걱정해 그랬단 소리나 이건희 회장 아파서 증인출석 못하겠단 소리, 별거 있나, 사기다. 아무 것도 안 했으면서 대통령만 되려고 하는 고건의 점잔 사기도 꽤 유니크하다. 하지만 최근 압권은 청계천이다. 혹자는 문화재 복원을 말한다. 전기료 몇 억 든단 비난도 한다. 그러나 난 뭐 새 조형물도 좋더라. 그리고 도심에 그 정도 물 흐르는 데 돈 좀 들면 어때. 물 흐르니까 좋잖아. 한 가지만 걸린다. 이름. 그러니까 이게 하천은 아니잖나. 상류서 내려 온 물이 모여 흘러야 개울이고 시내고 하천이고 되는 거지. 지금은 상류와 연결은 없고 도심 한 복판에서 여기서부터 시작, 하고 갑자기 뜬금없이 물이 솟는다. 그 뜬금없는 물길은 한강 끌어와 펌프로 뿜어주는 거고. 이거 하천 아니다. 청계천 있던 자리에 만든, 한강 물 흐르는 인공수로지. 고로 난 이걸 이명박 시장의 업적을 기려 ‘명박 수로’라 불러야 마땅하다 본다. 이걸 청계천이라 하는 건, 사기다. 임기 내 자연하천 복원 못하니 인공수로라도 만드는 추진력으로 인정받든가 아니면 임기 내 못하더라도 자연하천 복원의 기틀을 마련한 생태 마인드로 인정받든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둘 중 하나 선택했음 포기한 건 비용으로 지불해야지. 욕심도 많다.

5.

상기 리스트와 항목 비슷한 분들 연락들 주시라. 말 나온 김에 어떻게 계라도 하나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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