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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0 16:03 수정 : 2005.10.21 18:06

말글찻집

거품이 끼어야 맛인 게 있고, 빠져야 맛인 말이 있다. 자주 들먹이면 맛이 꺼지고, 아껴야 맛이 덧붙기도 한다. ‘사랑·행복’도 그렇다.

‘행복’이란 사사로운 것이어서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상대적이긴 하되, 재물·명예보다 건강·노동·화목으로 간추린다. 그것이 헌법(행복 추구권)에도 오르고, 문학을 넘어 학문·자본의 얘깃거리, 상품이 된 지 오래다.

‘행인지 불행인지’처럼 외자(幸)로 쓰이다 ‘복’을 붙여 쓴 지는 불과 몇십년이다. “복스럽다, 복되도다, 덕으란 곰배에 받잡고 복으란 임배에 받잡고”처럼 ‘복’을 오히려 많이 썼고, ‘행’은 “다행·만행·불행” 정도로만 쓰였다.

‘행복’을 크게 퍼뜨린 시가 있다.

“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유치환·행복)

행복이 사랑과 함께함을 일깨운다. 드러내기를 꺼리는 것은, 그것이 내밀한 때문이고 부끄러움이 깃들이는 까닭이다. 여성지·교회 쪽도 ‘행복’ 장사를 많이 하는데, 이젠 아무데나 써 천한 느낌까지 들 정도다.

“행복이 어디 자주 온다더냐”면 ‘행운’에 가깝고, “행복하다”고 하면 생활의 만족과 삶의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를 일컫는다. 가끔 “‘복락’을 누리다 간 사람” 식으로도 썼다. 비슷한 말로 ‘복지’(福祉)가 있는데, 이는 행복과 같은 말이로되 사회·행정 쪽에서 사람들의 생활 환경과 관련해 쓴다.

‘행복 거품’을 일으킨 또다른 장본은 영어 ‘해피’(happy, happiness)다. 영어를 쓰는 토박이들도 이를 마냥 ‘행복한’으로만 쓰는 것은 아닌데, 이 땅 어른들은 ‘행복’으로나 알고, 아이들은 ‘행복’을 알기 전에 ‘해피’를 먼저 배우니 당분간 ‘행복, 해피 거품’은 빠지지 않을 듯하다.


행복한 비명, 행복한 노후, 행복한 책읽기, 행복한 세상, 행복한 휴일, 행복한 뉴스, 행복한 경영, 행복한 선물, 행복한 웃음, 행복한 가요 ….

적어도 여기 나온 ‘행복’들은 자리를 잘못 잡았다. “기쁜, 즐거운, 살만한, 유쾌한, 다행스런, 보람된, 편안한, 안정된, 적절한 …” 따위에서 걸맞은 말들을 골라서 바꿔 써야 할 터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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