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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0 16:05 수정 : 2005.10.21 23:34

동아시아는 지금

“3백만명에 이르는 귀중한 목숨을 잃고 또 선인들이 애써 쌓아올린 영토를 잃었으며, 타국에 수많은 손해를 끼치고, 세계의 신용을 실추시켜 전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 있다. 대동아전쟁은 일본민족이 겪은 최대의 불행이고 비운이었다.”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된 <불모지대>라는 인기 대중소설의 모델로 알려졌고, 군사정권 시절 한-일간 정·재계 막후접촉 밀사로 주가를 높였던 일제 대본영 및 관동군 참모 출신 세지마 류조가 1996년에 출간한 회고록 <이쿠산카(기산하)>의 한 구절이다. 이런 그를 두고 국내에서는 일제의 대외침략정책을 반성한 일부 일제 고위관리들 가운데 한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건 곡해나 몽매에 가깝다. 그의 ‘회오와 반성’은 방향이 완전히 빗나간 이질적인 것이다.

위의 글에 이어 그는 계속한다. “다만 이 작전(대동아전쟁)의 결과 아시아 각지가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돼 오늘날 힘써 나라를 건설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조선·중국 등 동아시아 침공·약탈 등 일제 침략을 구미 제국주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성전으로 착각 또는 왜곡하는 뒤틀린 시선은 소위 ‘자유주의 사관’을 앞세운 우익들의 후소사판 역사교과서와 기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90년대 초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 때 과거사 사죄문제를 어느 선에서 마무리할지를 당시 가이후 도시키 총리와 논의하면서 그는 “메이지 43년(1910년) 일-한 합병을 ‘침략’ 내지 ‘식민지화’로 정의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비춰 부적당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국운발전의 템포를 단호하게 만주국 건설 범위에서 멈추고 지나사변(중국침략)을 일으키지 말아야 했다”거나 인도차이나 등 만주 이외의 지역으로부터 철병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것을 보라!

그의 반성이란 한마디로 전쟁 자체나 타인에 대한 억압과 약탈, 살륙에 대한 것이 아니라 조선과 만주까지만 먹고 더 이상의 욕심을 자제했더라면 숱한 인명손실과 피해도 막고 일본제국은 대국으로 살아남았을 터인데 왜 바보같이 실력 이상의 욕심을 냈느냐는 자책과 회오인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광신적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집착은 세지마 류조로 대표되는 일본 보수 주류의 시각과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2차대전 뒤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사회주의 봉쇄를 위해 그런 그들을 일본 지배세력으로 다시 부활시키고 양성했으며, 한반도 남반부를 그런 냉전전략에 짜맞추었다.

강정구 교수의 일련의 발언은 그런 미·일 주도 구도에 대한 거부와 청산의지로도 읽히지만 엉뚱하게도 반북·친북 따위의 색깔론을 앞세운 눈앞의 정략적 손익계산만 판치고 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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