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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와 평화
박기범 지음. 창비 펴냄. 9800원 |
쓰러진 아이가 있다면 들쳐업고 뛰겠다 피흘리는 아이가 있다면 피라도 닦아주겠다 전장 뛰어든 동화작가 눈에 포착된 떠돌이 아이들… 어른을 향한 ‘서러운 동화’의 마지막 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전범으로 기소한다”
동화작가 박기범을 누가 반전투사로 만들었는가. 툭하면 눈물바람인,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문제아’를 누가 전장으로 내몰았는가. 석유를 둘러싼 어른들의 탐욕에서 비롯한 이라크 전쟁. 탱크와 폭탄의 폭력은 매양 어른들을 겨냥하지만 희생되기는 약한 어린이들. 이러한 모순이 비단결 같은 작가를 ‘미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작가는 이라크 전쟁이 나던 해인 2003년 2월28일~3월5일, 3월13~17일, 4월2~12일, 6월20~7월31일 네 차례 바그다드를 다녀왔다. <어린이와 평화>(창비 펴냄)는 그 기간 동안의 현지 보고서다. 이라크는 아직 전쟁 중이라는 주장에 기대면 위 기록은 ‘박기범의 이라크 전쟁기’인 셈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쓰러진 아이가 있다면 들쳐업고 뛰겠다. 피흘리는 아이가 있다면 피라도 닦아주겠다.” 그해 4월 초 기자도 의사도 아니면서 무엇하러 전쟁터로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암만주재 이라크대사를 설득하여 비자를 받아내는 것이 고행의 시작이다. 작별전화에서 아버지는 마지막 부탁이라며 가지 않으면 안되느냐고 나직이 물었고 형은 꺽꺽 숨을 참다가 끝내 큰 소리로 울었다. 실제로 작가가 ‘전쟁’중 바그다드에 머물기는 열흘 정도. 짧기도 하려니와 폭격 속의 방공호 생활은 기록조차 힘들었다. “미군 탱크의 행렬에 옷을 벗어 흔들며 뒤를 따르며 좋아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 문득 반세기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마을을 접수하는 군복 빛깔에 따라 인공기와 태극기를 번갈아 숨기고 꺼내가며 흔들어야 했던 그 역사가 떠올랐다.”(136쪽) 수많은 생생한 전쟁 리포트에 비하면 그의 경험과 시야는 아주 좁다. 그나마 ‘겁에 질려, 숨가빠, 그리고 절망으로’ 전쟁일지는 끊겨 있다. 뜨거운 리포트는 몇 장의 사진이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박기범 전쟁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어린이를 통한 전쟁의 비극이다. 온통 어린이한테 쏠린 그의 기록에서 한편의 서러운 동화가 둥두렷이 빠진다. 바그다드의 한 호텔에서 만난 두 구두닦이 소년 하싼과 쎄이프 이야기가 그것. “가지 말라” 꺽꺽 참다 울어버린 형보름만에 다시 만난 하싼의 신발은 다 찢어져 있었다. 엄지 발가락이 나와 있고 전보다 훨씬 말라 보였다.(128쪽) 다음에 크면 아메리카와 싸우겠다던 하싼은 더이상 구두를 닦지 않았다. 대신 미군들에게 담배를 팔고 있었다. 쎄이프는 부모도 집도 없이 떠돌게 된 처지. 구두닦이 통도 빼앗겼는지, 잃어버렸는지 없다. 쫓겨다니며 길에서 잠을 자고 구걸을 해서 배를 채운다. 전쟁 전부터 하싼과 쎄이프는 함께 구두통을 메고 다니던 동무였다. 그런데 지금은 둘의 처지가 아주 달라졌다. 하싼은 집에서 식구들과 같이 생활했으나 쎄이프는 거리의 아이가 되었다. 그래봐야 전쟁통에 먹을거리를 찾아 미군 주위를 배회하는 가난한 아이들에 불과하지만.(215쪽) 하싼의 집을 찾아간 작가. 베란다에 잠시 나갔다가 음료수 차례가 가지 않은 쎄이프는 ‘거리의 아이’란 자격지심에 울상이 된다. 그를 달래려 작가는 쎄이프한테 닭고기를 사주마고 약속한다. 그 인연으로 그를 비롯한 몇몇 거리의 아이들한테 매일 밥을 사주게 된다. 어떤 소년한테는 어물어물 운동화를 사주기도 한다. 자신이 묵는 여관에 데려와 목욕을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머물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된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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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바그다드 하싼의 집 베란다. 전쟁은 구두닦이 소년 하싼과 쎄이프의 운명은 갈랐다. 하싼은 식구들과 함께 살면서 학교를 다니고, 쎄이프는 집도절도 없는 거리의 아이가 되어 미군 주위를 배회한다.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동화작가는 여전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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