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20 17:35
수정 : 2005.10.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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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함정
정희상 지음. 은행나무 펴냄. 1만1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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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독서
참여정부 들어 이곳저곳에서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가해자들의 손으로 스스로의 죄를 밝히게 한다는 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정희상 <시사저널> 탐사보도 전문기자가 쓴 <대한민국의 함정>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날 공동경비구역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김훈 중위 사건, 1949년 경북 문경에서 국군이 저지른 양민 학살 사건은 국가 권력이 피해자들을 두번 세번 죽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통속으로 똘똘 뭉친 국방부의 담장 안에는 과학도 양심도 설 자리가 없었다. 지난 4월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살해사건 전말은 007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그를 파리 교외 양계장에서 암살했다고 ‘자수’한 암살범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시위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찍힌 사진 때문에 위장간첩 생활을 해야 했다. 1996년 효산콘도 비리사건 감사를 중단하라는 외압을 폭로한 감사원 내부고발자 현준희 씨. 감사원 수뇌부는 그의 의로운 외침에 상은커녕 가혹한 ‘보복’을 안겼다. 친일파 조상들이 나라를 판 대가로 모은 재산을 되돌려 달라고 소송을 낸 후손들의 파렴치 행각은 광복 60돌을 맞은 올해 크게 조명을 받았다.
뒤가 구린 권력자들에게 몇년이고 진실을 파고 드는 정 기자는 눈엣 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조폭들이 할 법한 온갖 공갈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나는 국민의 정부가 참여정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권력기관들이 가진 이런 근본적인 속성과 마음가짐이 하루아침에 천사처럼 변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권력집단은 과거를 감추기 위해 곳곳에 함정을 파 놓았지만, 정 기자는 그 함정의 위치와 속성까지도 파헤쳤다. 전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낸 소설가 김훈씨는 책 앞머리에서 “그의 상급자가 되는 일은 즐겁고도 힘겨웠다”고 술회했다.
이 책에 소개된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 ‘우리’의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찾아가는 정 기자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유다.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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