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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기회 많을수록 왜 괴로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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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0 18:32
수정 : 2005.10.2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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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배리 슈워츠 지음. 형선호 옮김. 웅진 펴냄.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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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기회 많다는 건
포기할 것도 많다는 뜻
획득 기쁨보다 상실 고통 커
“선택 제한해야 행복” 역설
<선택의 심리학>(웅진 펴냄)의 원제는
다. ‘선택의 역설-왜 선택기회가 많아질수록, 또는 더 많은 선택을 하면 할수록 만족도는 오히려 떨어질까’ 정도의 의미이겠는데, 필라델피아 스워스모어 대학의 사회이론 및 사회행동학 교수인 저자 배리 슈워츠는 심리학자·경제학자·시장조사자·의사결정 연구자 등이 실시한 각종 통계와 조사결과들을 들이대며 왜 그런지를 흥미로운 개념틀들을 동원해 줄기차게 해부하고 해법까지 제시한다.
동네 슈퍼마켓의 수백종에 이르는 쿠키에서부터 텔레비전 채널, 건강보험, 성형, 대학 학과목이나 직업, 심지어 사랑하는 방식 등에 이르기까지 재화나 서비스의 종류와 양이 폭증하고 있다. 소득이 늘고 선택폭이 확대되면 개인의 통제력과 자유의 범위도 그만큼 확대된다. 문제는 선택지와 자유가 확대된만큼 행복도 커졌느냐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 반대다.
선택의 기회가 늘면 고려해야 할 대안의 수도 많아지고 당연히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그만큼 ‘기회비용’이 커지는 것이다. 선택해서 얻은 만족감은 포기해야 했던 대안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상쇄되며, 기억에 더 강하게 남는 것은 획득의 기쁨보다는 상실의 번민과 고통이다.
소음반응 실험. 8초 동안 한가지 소음을 듣게 한다. 그리고 또 한번은 16초 동안 듣게 하되 8초는 앞의 것과 같은 강도의 소음, 나머지 8초는 그보다는 좀 덜 시끄러운 소음을 듣게 했다. 사람들에게 어느쪽이 견딜만했는지를 물었더니, 대다수가 소음청취 시간이 2배나 긴 후자 쪽을 택했다. 끝부분의 상대적으로 덜 시끄러운 것만 주로 기억해 덜 짜증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이른바 ‘정점-끝(peak-end)’ 규칙이다. 주유소 경쟁사례를 통해서는 ‘틀 만들기’ 효과를 설명한다. 공항도착 시간이 5분 늦어 비행기를 놓친 것과 30분 늦어 놓친 것 중 어느쪽이 더 괴로울까?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쪽과 동메달 딴 쪽 가운데 어느쪽이 더 잠못 이룰까? ‘간발 효과’가 딱 떨어지게 정리해준다.
이밖에 ‘가용성 추단율’ ‘선물효과’ ‘매몰비용’ ‘학습된 무력감’ ‘2순위 결정’, ‘누락편견’ ‘반사실적 생각’ ‘적응’ ‘쾌락발판’ ‘입지재’ 등의 개념을 구사하는데, 책을 통털어 관통하는 중심개념 중의 하나가 ‘극대화자(maximizer)’와 ‘만족자(satisficer)’다. 극대화자란 최고만을 추구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 만족자는 충분히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인데 더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놓칠까봐 또는 놓친 데 대해 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다. 이 책 기본명제의 문제의식은 이들 극대화자-만족자 개념에 집약돼 있으며, 마지막에 붙여놓은 11가지의 해법(조언)의 출발점도 거기다. 쉽게 말하면, 정말 필요한 것 중요한 것 중심으로 선택범위를 제한하고 그밖의 기회들엔 신경쓰지 말고 남는 에너지는 다른 일에 써라, 비교최고를 추구하지 말고, 자신의 가치기준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고 감사해라는 것이다. 제약을 무조건 싫어하진 말아라는 것도 있는데, 예컨대 쓰레기 분리수거라는 제약을 거부할 경우 닥칠 혼란과 불편과 비용을 생각하면 ‘제약’이 곧 ‘해방’이라는 말도 그럴법해 뵌다.
지난해 9월 <선택의 패러독스>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출간했던 출판사가 1년만에 제목과 디자인을 바꿔 다시 내놨다. “책 내용엔 자신이 있는데, 좀 낯선 제목 때문인지 생각만큼 반응이 없었다. 새 단장으로 다시한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출판사쪽은 밝혔다. 그랬다면 좀 더 당당하게 취지를 밝히고 오히려 선전포인트로 삼았다면 더 좋았겠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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