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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한국어 연습장 |
한국어 연습장/② 과일 : 과실 : 열매
[오늘의 연습문제] 괄호 안에서 알맞은 낱말을 고르면?
(과일|열매)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
(과일|열매) 될 꽃은 첫 삼월부터 알아본다.
정부는 농산물가격 안정을 위해 (과일|과실) 생산량을 조사했다.
[풀이]
과일, 과실, 열매를 가르는 기준으로는 단연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꼽아야 한다. “인간의 치명적 약점은 세 끼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했던 노신의 말마따나, 먹고 사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먹고 살 만해지면 먹는 일을 대수로이 여기기 십상이지만, 말은 그렇지 않다.
‘과일’에 속하는 것은 다 먹을 수 있다. ‘과실’은 본디 ‘과일’이라는 뜻이었지만 현재는 ‘과일’에 일부 ‘실과’를 보탠 말이 되었다. 예를 들어 밤, 호두, 잣, 은행 같은 것은 ‘과실’이라고 하지 ‘과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간혹 과육을 먹지 않는 ‘과실’은 약이나 차 같은 것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열매’는 식물이 맺는 모든 종류의 결실을 가리킨다. 따라서 먹을 수 없거나 먹지 않는 것도 많다. ‘열매’는 비유로도 곧잘 쓰인다.
맛도 구분의 기준이 된다. ‘과일’은 대개 수분이 많고 단맛이나 신맛이 나며 향기가 좋다. 그래서 참외나 토마토 같은 채소의 열매가 ‘과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과가 과일 망신을 시키는 이유는 못생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떫고 시어서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가를 치르고 얻느냐 아니면 거저 얻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일’은 사람이 가꾸어서 손에 넣는 것은 물론, 돈을 치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열매는 대부분 자연에서 거저 얻는다. 이따금 까치가 배 농사를 망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까치들에게 배는 ‘과일’이 아니라 ‘열매’일 뿐이다. 까치들이 돈을 치르고 배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자신을 키워준 본체에 붙어 있느냐 붙어 있지 않느냐 하는, 실존의 조건을 따질 수 있다. ‘과일’은 나무에서 독립해 인간세상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며 존재한다. 하지만 자연이 준 생명은 이미 잃어버린 셈이다. 이에 비해 ‘과실’이나 ‘열매’는 여전히 본체에 붙어서 생명을 누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보면 가장 품이 넓은 것이 ‘열매’이고, ‘과실’과 ‘과일’은 열매에 속한다(열매⊃과실⊃과일). ‘과실’은 둘 사이에 초라하게 끼어 있는 듯하지만 ‘열매’와 ‘과일’이 채우지 못하는 의미를 지키고 있으면서 ‘과실수’ ‘과실농사’ 같은 복합어의 재료가 되는 농학 용어이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다”고 노래한 릴케의 시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기도하는 마음과 아울러, ‘과일’과 ‘과실’도 알차게 영글었으면 한다.
[요약]
과일: 먹을 수 있다|가꾸어야 한다|본체에 붙어 있지 않다
과실: 먹을 수 없는 것도 있다|가꾸지 않는 것도 있다|본체에 붙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열매: 먹을 수 없는 것도 많다|가꾸지 않는다|본체에 붙어 있다
김경원/ 문학박사·한국근대문학
[답] 과일, 열매, 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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