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문화인류학과
|
울타리안 가둬놓은 맹금류는 야성을 잃어가고 같은 종에서 격리된 동물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과밀화된 도시공간은 ‘인간 동물원’ 동물의 눈빛에서 대안적 삶터의 얼개를 그려본다
생활속의 문화사회학 사람은 동물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동물을 보면 눈빛을 반짝이고,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애완동물은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른 동물들과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면서도, 문화적인 차원에서 그들에게 독특한 정서와 의미를 부여해왔다. 고대의 많은 신화들에서 동물들은 ‘환웅’처럼 초월적인 상징으로 군림했고, 토테미즘 종교에서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만화와 동화에서는 수많은 동물들이 의인화된 캐릭터로 등장한다. 또한 일상 언어에서도 동물은 자주 비유된다. ‘여우처럼 교활하다’, ‘늑대처럼 엉큼하다’, ‘곰처럼 미련하다’, ‘양처럼 온순하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 ‘잉꼬 부부’, ‘평화의 비둘기’, ‘꽃뱀’, ‘개미군단’, ‘다크호스’, ‘상아탑’... 동물들은 신성함의 아이콘에서 인간성의 표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로 채색되어 온 것이다.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연암이 [열하일기]에서 코끼리를 처음 본 충격과 감흥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듯이, 낯선 동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진기한 경험이다. 그러한 시각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 동물원이다. 인간은 일생에서 최소한 네 번 동물원에 간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 부모의 손을 잡고, 연인과의 데이트코스로, 결혼하여 자녀를 데리고, 그리고 노후에 손자 손녀와 함께 간다는 것이다. 아득한 옛날 인간이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어우러져 살았던 시절의 무의식적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일까. 동물원에 가면 어른들도 나이를 잊고 어린 아이의 마음이 된다. 그룹사운드 <동물원>의 노래들처럼, 그곳은 언제나 정겹고 유쾌한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동물원의 역사는 기원전 15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나 로마에서는 동물들의 수집 및 사육을 위해 동물원을 만들었고, 중세에도 왕후나 귀족들이 이방의 동물들을 구해 기르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그러한 동물원은 궁전에 함께 건립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이한 구경거리를 과시하면서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인이 구경할 수 있는 형태의 동물원은 18세기 중반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등장했고, 1907년 세워진 독일의 하겐베크 동물원은 이른바 방사식(放飼式) 동물 수용방법을 채택하여 현대 동물원의 원형이 되었다. 하겐베크는 19세기 후반부터 세계 곳곳의 온갖 동물들을 포획해다가 진열하였고, 심지어 그린란드와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까지 데려나가 순회 전시하면서 제국주의의 위용을 드러냈다. 예나 지금이나 동물원은 권력과 풍요의 토대 위에 존립한다.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상황을 증언하는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토토의 눈물>이라는 책에는 동물원에 얽힌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탄자니아의 어느 초등학교에 갔을 때 어느 텔레비전 방송국 사람이 아이들에게 도화지와 크레용을 주면서 아무 동물이나 그려보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내놓은 그림 가운데 동물은 두 개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파리 같은 벌레나 다리가 가느다란 새를 그렸다. 기린이나 얼룩말 같은 야생동물들이 다양하게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기대는 어긋났다. 아프리카에는 몇몇 보호구역에서만 동물을 볼 수 있는데, 그 아이들은 그런 곳에 구경 갈 수가 없다. 그나마 대신 동물을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이나 그림책도 없었기에 그렇게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에 비해 오히려 우리는 각종 미디어로 동물의 왕국을 생생하게 접하고, 웬만한 대도시에 동물원이나 수족관이 하나 이상 있다. (한국에 현재 20개) 그런데 이제 동물원은 단순히 동물들을 가두어 놓고 구경하는 곳이 아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과 그 생태를 연구하고 보전하는 연구 및 교육의 센터로 탈바꿈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한 흐름에 맞춰 동물원 내의 공간 구조와 생활환경을 바꾸어 주고 있는데, 이를 ‘환경 및 행동 풍부화’(environmental & behavioral enrichment)라고 한다. 종래의 동물원에서는 종별(種別)로 고유하게 지니고 있던 서식권(biotop)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통합하고 배치해놓은 결과, 자연에서라면 접하지 못하는 동물들끼리 가까이에서 지내야 한다. 그리고 초원을 뛰어다니며 사냥해야 할 맹금류들이 낯설고 좁은 울타리 안에서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식사에 길들여지면서 야성을 잃어간다. 이러한 상황은 동물들에게 스트레스, 자해, 비정상 행동, 비만, 성인병 등을 일으킨다. 서울대공원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전시장의 물리적 환경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동물들이 먹이를 찾는데 몸과 머리를 쓸 수 있도록 시설을 개조하였다. 또한 같은 종끼리 적합한 무리를 이루어 살도록 배려하고(사회성 풍부화), 종별로 생존에 긴요하게 발휘하는 오감에 자극을 주도록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감각 풍부화). 이러한 동물원의 패러다임 전환은 인간 세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성과 감각을 풍부하게 하는 것은 지금 교육의 중대한 과제가 아닌가.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는 <인간 동물원>이라는 책에서 그러한 통찰로 현대인의 삶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단조롭고 획일적으로 규격화된 과밀 환경이 폭력과 불안을 증폭시키면서 맹목적으로 자극을 추구하게 한다. 따라서 앞으로 도시공간은 자라나는 유기체가 되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면서 창의적인 모험을 다양하게 허용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동물원은 문명의 서식지를 점검하면서 대안적 삶터의 얼개를 조감하는 전망대다. 감옥에서 쉼터로 전환하는 그 공간에서 우리는 자연의 순리를 배울 수 있다. 광활한 대지를 그리워하는 그들의 눈빛에서 시원(始原)의 세계를 만나보자. 그들의 포효와 지저귐에서 생명의 미래를 예감하자.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