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0.27 17:29 수정 : 2006.02.22 19:45

동녘 ‘사랑의 모든 것’

아깝다 이책

‘사랑’이 냉장고에서 갓 꺼낸 캔맥주처럼 변한 지 오래다. 둘 다 시간을 때우기 좋고, 짧은 동안에 갈증을 풀어준다. 그러나 그 뒤에는 더 긴 허무와 더 깊은 목마름이 기다린다. 사랑은 왜 시작이 짜릿하지만 끝은 허전한 것이 되었을까?

사랑을 운위하는 이유는 ‘사랑의 실재’를 파헤친 책 <사랑의 모든 것>을 들먹이고 싶어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는 너무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그 단어가 들어간 책은 흘러 넘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은 다르다.

우선 저자 벨 훅스는 흑인 페미니스트이다. ‘사랑서’의 작가가 대부분 남성이고 그 독자는 여성이라는 구도를 과감하게 깼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식의 자기계발서 형식을 띤 연애서와도 다르다. 저자는 사랑이 지침을 따른다고 완성되는 전략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철저한 자기반성 위에 싹튼 자기애의 확산이다. 또 이 책은 사랑을 이성보다 하위에 있는 감성의 소산이라는 근대적인 사고방식도 거부한다. 사랑의 본질은 ‘윤리’에 있으며 그 어떤 것으로도 폄훼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벨 훅스의 사랑의 본질은 자기애에서 피어나 자신과 타인의 정신적인 성장을 돕는 의지다.

이 책은 역자인 윤길순 선생의 추천으로 태어났다.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석학으로 인정받는 벨 훅스의 책이 국내에 별로 소개되지 않았다는 점과 여성이 여성의 관점으로 사랑을 거론한 책이 많지 않다는 점이 추천 이유였다. 하지만 추천 이유가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도 되었다. 여성들마저도 남성 작가가 쓴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더 선호하는 현실에서 까끌까끌한 사랑의 진짜 본질을 전하려는 흑인 페미니스트의 시도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편집자로서 대중의 코드를 읽지 못한 점을 반성해야 할까? 적어도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은 반드시 세상에 있어야 할 명분이 있다. ‘낭만적인 사랑’은 환각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환각에 속아 몇 차례 사랑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은 상처받은 이들을 위무하며 그들의 새로운 사랑이 고귀해질 수 있음을 말한다.

‘낭만적 사랑’ 앞에 벨 훅스는 턱 없이 무력하다. 마흔을 넘긴 못생긴 흑인이며 페미니스트이며 암환자다.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에서 엑스트라 역할밖에 할 수 없다. 그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나이 든 여자가 ‘밝힌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곧 그가 말하는 열세 가지의 사랑의 얼굴은 많은 이가 가슴에만 담고 있는 ‘사랑’을 머리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그의 사랑 안에서 한쪽은 패배하고 한쪽은 승리하는 사랑의 동역학은 깨졌다. 나이, 성, 인종, 계층에 상관없이 존중받을 수 있다. 학대하거나 상대의 의지를 꺾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연인을 존중하고 가능성을 더욱 열어주는 것이며 자녀의 의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사랑의 모든 것>에는 달콤한 사랑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사랑의 정의가 담겨 있다. 모든 실수도 용인할 수 있는, 세상을 더욱 밝힐 수 있는 고귀한 사랑을 많은 독자가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희건/동녘 주간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