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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7 17:31 수정 : 2005.10.28 14:29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2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각권 1만8000원

3년 전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돌풍 주역
전국역사교사모임 또 일냈다
‘엑스트라 대륙’에 시선 골고루 주고
세계사와 한국사의 접점도 찾는다
제국주의 정당화한 고대·중세·근대 구분도 없애

3년 6개월 전 적어도 한국적 풍토에서는 ‘획기적’이라는 수사가 어색하지 않을 새로운 개념의 역사책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로 독서계에 돌풍을 불러일으킨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이번엔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휴머니스트 펴냄)를 들고 나왔다. 전국 교육현장의 2천여명 회원들의 응원 속에 10명의 집필진, 편찬위원 25명, 검토위원 12명, 편집·디자인 스태프 28명 등 175명의 개발인원이 투입된 이 야심작은 준비된 만큼 전작의 성취를 한 차원 더 높이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관계자들은 1, 2권 합쳐 지금까지 모두 30여만 부가 팔려나가면서 역사 교과서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흔들고 있는 전작 이상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출판사쪽은 ‘청소년과 함께 살아 숨쉬는 21세기 대안교과서’라는 부제를 단 전작(세계사쪽도 마찬가지)의 독자 중에는 의외로 40대가 두꺼운 층을 이루고 있다며, 그들의 남녀 성비는 약 3 대 7 정도라고 밝혔다. 청소년들 자녀로 둔 가정주부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하고 있다.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볼거리가 더 많아졌다는 점이다. 그냥 많아진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하고 세련됐으며, 서술내용 및 방식과의 유기적 결합면에서 완성도가 높아졌다. 사진과 그림 등 더 많아진 참신한 컬러자료들이 지면을 화려하고 생생하게 꾸미고 있고, 지도들을 적극 활용한 과감한 디자인도 ‘진보’했다는 느낌을 준다. 보기에 좋을 뿐 아니라 사실 인식과 이해에 매우 효과적이다. 이는 전작 <살아있는 한구사 교과서>에서도 내세웠듯이 역사교육이 고리타분한 암기과목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을 위한 역사교육” “생동감있는 이야기와 감동이 살아있는”, 그야말로 재미있고도 유익한 교육이 돼야 한다는 변함없는 출간목적 달성에 훌륭하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2권 238~239쪽 ‘청소년의 삶과 꿈’ 난에 실린 만화형식을 곁들인 소품 ‘어느 여덟 살 아이의 냉전에 대한 기억’은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 광풍의 희비극을 여운 깊게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화려한 편집 소설같은 감동

이미 전작에서도 돋보였지만, 이데올로기적 폐색감이나 수동성 등 낡은 관념과 ‘성역’들을 벗어던지는 과감성, 기성 가치나 시각·해석의 허구를 모나지 않으면서도 철저히 깨부수는 방향성과 실증성은 이번에도 두드러졌고, 세계사라는 특성 때문에 그 점은 더욱 자유롭고 빛나 보인다. “평화와 민주주의,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세계사 인식”, 약소민족, 여성, 빈곤층 등 “소수자의 지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공존과 연대를 지향하는 세계사”, “과학기술이 가져온 사회변화를 반성적으로 살피면서 경쟁과 성공지상주의에 대한 대안적인 삶의 방안을 성찰할 수 있는 역사”라는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의 자연스런 귀결일 것이다.

무굴 제국의 몰락과 함께 쇠퇴기를 맞긴했으나 19세기의 인도는 중국 등과 더불어 가장 발달한 문명과 경제력을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부당한 납세를 요구하고 면화 단작재배를 강요하면서 값싼 면제품을 대량 반입했으며 숲도 마구잡이로 베어간 영국의 제국주의적 침탈로 인도 민중들은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게 됐다.
그와 무관하지 않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서구 중심의 역사인식 태도 극복을 첫 손가락에 꼽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역사는 곧 그리스·로마부터 시작하는 유럽이나 미국 중심의 구미사, 서구사고 나머지 지역 역사들은 조연이나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는 기존 역사서술체제가 너무 익숙해서 이상하다는 느낌조차도 갖지 못하는 지경이 돼 있는 우리 현실에서 지당한 선택이다. 기껏 중국 정도, 또는 마지못해 일본 정도를 끼워넣어 구색맞추기나 하면서 오리엔탈리즘에 찌든 서구 중심 역사인식은 실은 비서구인들에겐 자기부정의 ‘세뇌’공작과 다를 바 없다. 조금만 생각을 연장하면, 미국 일본의 패권주의적 정책 비판이나 북한 바로 알기 차원의 노력들조차 조건반사적으로 ‘빨갱이’나 친북·반북, 친미·반미로 연결시켜 소모적인 논쟁에 함몰해버리는 이 땅의 지적 천박성도 결국은 뿌리깊은 그 세뇌악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구중심사관’이란 역겨운 ‘식민사관’의 변종일 뿐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그래서 고대·중세·근대 따위의 기존 역사교과서 시대구분 방식을 완전히 무시해버린다. 서구의 행보를 표준화하고 그들의 잔혹한 제국주의적 약탈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그런 시대구분방식이야말로 식민사관의 명백한 증표다. 중세 봉건체제를 거쳤느냐, 언제 거쳤느냐 따위로 집단간의 역사발전 우열을 가리려는 저열함과, 거기에 짜맞추기 위해 있지도 않은 봉건체제를 날조하기까지 하는 병적인 열등감이 기존 역사교육과 역사 그 자체를 왜곡해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비서방 지역이 일본까지를 포함한 서방의 침략과 지배를 받은 것은 비서방이 뒤떨어지고 못났기 때문이 아니라 서방이 침략하고 지배했기 때문에 뒤떨어지고 못나게 됐다는 전복적 사고가 필요하며, 그것이 진실에도 훨씬 더 근접한다. 그런 노력이 또 다른 쪽으로의 편벽을 의미하진 않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필자들은 그 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교육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살아갈 미래의 모습을 실천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도록 기여해야 한다. …기존 교과서가 기대하는 교육은 개별지식의 습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만들려는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는 현재 세계의 구조를 해명하고, 아이들이 살아갈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기획안)

독자가 직접 역사 주인공 만나도록

본문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통글로 돼 있고,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시되는 실마리를 통해 독자가 특정한 시공간으로 들어가 주인공을 만날 수 있도록 한 다음 주인공의 움직임을 통해 사건과 시대의 변화를 스스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 발상도 평가할 만하다. ‘세계사 따로 한국사 따로’의 기존 역사교과서 및 역사교육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사와 한국사의 접점 찾기에 노력한 흔적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 부분이 문제의식만큼 충실한 결실을 얻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국정과 검정, 교실이나 강의실이라는 틀을 과감히 부수고 ‘지도 바깥으로 행진’해 감으로써 역사교과서와 일반 독자의 행복한 만남을 끌어낸 이런 혁신적 발상 전환이 이룩한 성취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궁금하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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