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교수·바이오시스템학과
|
정재승의 책으로 읽는 과학
이타적 인간의 출현최정규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2004)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친구와 나눠가지라며 친구 앞에서 10만원을 줬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친구가 자신에게 돌아올 몫이 너무 적어 돈 받기를 거부한다면, 둘 다 돈을 가질 수 없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친구에게 얼마를 나누어줄 것인가?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문제의 해답은 간단하다. 친구는 자신의 몫이 얼마든 무조건 받아야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따라서 나는 매정하더라도 100원만 주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며, 친구는 단돈 100원이라도 거부하지 않고 받는 것이 그나마 이익이다. 그런데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사람들은 이런 경제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만~4만원 정도를 친구에게 나눠준다. 게다가 친구는 돈이 3만원보다 적으면 아예 받지 않겠다고 거부권을 행사한다. 차라리 둘 다 못 받는 게 더 맘 편하다는 얘기다. 이 ‘최후통첩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경제학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인간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으며, 감정에 휘둘리는 비합리적 주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독재자 게임’이란 걸 해보면 결과는 더욱 당혹스럽다. 이번에는 친구에게 얼마를 나누어주든 친구는 거부할 권한이 없다. 무조건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친구에게 얼마를 나누어주겠는가? 친구는 거부권이 없으니, 독재자인 당신은 마음대로 금액을 정해도 상관없다. 그런데도 실험을 해보면 사람은 모질지 못하게 1만~2만원 정도를 친구에게 나눠준다. 3만~4만원을 나누어주는 것은 친구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한 이기적인 결정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독재자 게임에서 1만~2만원을 주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이타적인 행위는 어떤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기적인 행위는 이타적인 행위보다 훨씬 더 큰 이득을 주기 때문에, 오랜 진화를 거치면 당연히 인간은 점점 이기적인 동물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헌혈을 하고 파키스탄 피해자를 위해 기꺼이 성금을 내는 걸까? 최정규 박사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은 인간의 도덕성이 어떻게 이기심을 물리쳐왔는지에 대해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자는 인간의 합리성과 이기심에 기반을 둔 경제이론과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을 결합한 ‘진화적 게임이론’으로 인간의 이타적 행동을 다시 들여다본다. 결국 인간 사회가 자연선택되기 위해서는 합리성에만 기초한 단기적 이익에 눈멀지 않고, 신뢰와 공정성을 바탕으로 상호 협조를 해야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요즘 <사이언스> 같은 저명한 과학저널은 인간이 게임을 하면서 의사결정을 하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연구한 신경과학자들의 논문을 자주 소개하고 있다. 이성과 감성, 그리고 보상 욕구가 어우러진 의사결정의 메커니즘을 추적하는 일이 최근 과학계의 핫이슈이기 때문이다. 최정규 박사는 자신의 박사학위 연구주제를 학자들을 위한 논문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는 책으로 펴냈다. ‘만약 모든 과학도들이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박사학위 주제에 관해 이렇게 근사한 교양과학서적도 함께 출간한다면, 우리 과학출판계는 얼마나 좋은 책으로 풍성해질까’ 하고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