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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종교사상사 1·2·3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이용주·최종성·김재현·박규태 옮김. 이학사 펴냄. 1권 3만3000원, 2권 3만5000원, 3권 2만8000원 |
저명한 종교학자의 평생 업적 담은 종합서 종교는 역사적 환경에 따라 변하기도 했지만 역사적 조건에 규정되는 종속변수는 아니었다 외피만 바뀔뿐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 중에서 종교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인구의 절반 이상이 종교를 믿고 있는 현실만 고려하더라도 한국은 아직까지도 종교의 나라로 불러도 무방하다. 게다가 종교의 가지 수는 어떠한가. 기독교나 불교와 같이 신도 수가 많은 종교를 포함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종교들도 무수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가 믿는 종교 이외의 종교에 대해서도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법도 하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세계 여러 곳의 종교들에 대하여 쉽게 알 수 있는 핸드북 수준의 책이 없을까 수소문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종교란 것이 어디 여행사 안내 책자처럼 손쉬운 길잡이의 도움을 받아 이해될 수 있는 것인가. 국내에 출판된 몇몇 세계종교 관련 저서만 하더라도 처음부터 두꺼운 분량으로 독자를 질리게 만들고, 책 내용 또한 정독의 인내를 요할 만큼 만만치 않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출판된 엘리아데의 <세계종교사상사 1·2·3>(이학사 펴냄)도 예외는 아니다. 권당 600-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솔직히 일반 독자로서는 용이하게 접근하기 어려운 내용이, 요즘과 같은 세상에 무척 인상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비중과 중요성을 고려하면 예전에 이미 출판되었어도 모자랄 가치를 지닌 저서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종교에 대한 역사책 저자 엘리아데는 워낙 저명한 종교학자라서 국내에도 비교적 여러 권의 책이 번역 출판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저서들에 비하여 주목받아 마땅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엘리아데가 평생에 걸쳐 이룩한 종교학의 종합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세계의 무수한 종교들을 총체적인 구도에 입각하여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종교자료의 범위는 시간적으로는 구석기시대부터 종교개혁까지이고, 공간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유럽, 지중해, 중동, 인도, 유라시아, 중국, 티베트 등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다종다양한 종교가 취급되고 있지만 백과사전식 나열로 그치지 않고 저자의 일관된 시각에 따라서 전체적인 조화와 통일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엘리아데가 수많은 종교자료 속에 용해시키고 있는 관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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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8일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추기경 비밀회의) 개최 직전에 열린 특별미사에 참석한 추기경들. 이날 미사를 주재한 요제프 라칭거 독일 추기경이 후임 교황으로 선출돼 제256대 교황 베네딕트 16세로 즉위했다. 바티칸/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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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데는 이러한 의식현상 혹은 의식적 실재인 종교를 역사적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종속변수로 보지 않는다. 아마도 ‘선험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늘 종교적인 지향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구원과 재생에 대한 희구라고 해도 좋을 인간의 종교적 성향은 역사적 조건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더라도 외피만 바꿀 뿐 본질은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표출된다. 엘리아데는 <종교사상사>에서 역사적 조건에 따라 등장한 각종 위기의 순간들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화석화된 자료의 생생한 해석 하지만 종교는 새로운 기술의 발견, 정치적 변혁, 사회경제적 변동 등에도 불구하고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여 이와 같은 위기를 구원과 창조의 계기로 전환시키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종교’와 ‘역사’ 양자의 모순이 <종교사상사>에서 해결되는 방식은 이처럼 종교현상학자로서 엘리아데가 지닌 독특한 관점에서 연유한다. 엘리아데를 한번이라도 접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하여 그가 어떻게 종교의 본질을 역사화하는지 주목해 볼 일이다. 그와 처음으로 만나는 분들이라면 혹 그가 사용하는 용어의 독특성, 책 전체에 걸쳐 묻어나는 낯선 취향, 화석화된 자료를 생생한 목소리로 살려내는 해석 방식에 당혹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분명 엘리아데는 다른 어떤 학자와도 준별되는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수년 전 죽은 엘리아데가 이렇게 방대한 분량으로도 모자라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듯 손짓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것도 그가 말한 것처럼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임현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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