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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7 17:57 수정 : 2005.10.28 14:28

권혁범/대전대 교수·정치학

남편 재충전 뒷바라지로 아내는 가사노동 매몰 현대차 노동자 성별분업 어떻게 재생산되나 현장인터뷰 역작 빚어

나는 이렇게 읽었다/조주은 ‘현대가족 이야기’

사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은행 강도의 정치사회학>, <남파 북파 ‘간첩’들에 대한 미시적 서사>, <조선일보 사설의 정신분석학적 연구>, <‘자유민주주의 수호 총궐기’ 세력의 수사학에 대한 기호학적 연구> 등이다. 문제는 이 책들이 현재 겨우 구상단계에 와 있으며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의 내 저서라는 점이다. 완성된다 해도 어찌 내 스스로 내 책을 소개하는 치기어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훗날의 (10년후? 20년후?) 다른 필자들이 정할 일이다.

각설하고, 최근에 흥미롭게 읽은 책은 조주은의 <현대가족 이야기>(이가서 퍼슨웹, 2004)이다. 이 저서는 현대자동차 남성노동자와 그들 아내들의 성별 분업구도가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세세한 현장인터뷰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역작이다. 순탄치 못한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단순반복적인 보조적인 노동으로부터 탈출구로 ‘현대’ 노동자와의 결혼을 선택한 여성들, 강도 높은 노동을 재충전해줄 수 있는 가정 마련의 도구로서 결혼을 선택한 남성들은 어떤 삶을 누리게 되는가?

남성들은 특근 등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리게 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전업주부인 아내의 보살핌을 요구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남편의 지친 모습에 ‘안쓰러운’ 아내들은 남편의 건강관리에 온 신경을 쓰고 내조를 하며 양육과 가사노동에 하루 전체를 바치고 만다. 남편들에 대한 연민은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적 구도를 강화하는 강력한 정서적 기반이다. 여성들의 정체성은 아내와 어머니에 갇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농촌 저학력 출신 그녀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으며 있다 해도 그것은 탁아비용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의 맞벌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침상을 차려주지 않거나 남편에게 소홀한 독립적인 여성은 동질적인 여성 ‘수다공동체’에서 왕따가 되기 일쑤다. ‘우리 아저씨’에게 어떤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하는 등의 문제가 수다의 중심이다. 전업주부로서의 소외감이 싹트는 순간 그들은 애를 낳고 양육에서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키워간다.

독립을 꿈꾸는 여성? 그것은 아내가 한푼 생활비라도 벌어야겠다는 말하는 순간 자존심이 상해버린 남편이 ‘관둬라, 내 특근 한번 더 뛰지 뭐!’ 한마디 툭 던짐으로써 깨져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현대자동차가 택하고 있는 ‘가족임금제’의 결과다. 현대의 임금은 ‘상대적 고임금’이지만 그것은 고강도 노동, 특근, 야근을 밥먹듯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에서 그 남성노동을 재충전할 여성가사노동을 전제한 임금이다. 문제는 그 여성노동이 전혀 가시화되고 있는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회사는 공장 견학 및 교양강좌 등을 통해 가족 이데올로기를 심어주고 전파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회사에 그렇게 저항적인 남성노동자들도 ‘스위트 홈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동조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회사 교육을 받은 아내들이 그 다음날 차려주는 밥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회사충성심 강화를 위한 아내 교육은 진보적인 남성노동운동의 부계질서강화 의지와 공모관계에 놓여 있다.

내 수업에서 이 책을 읽은 학생이 던진 질문. 누가 더 고통스러울까요? 내가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전업주부’를 택할 남학생? 역시 아무도 손을 올리지 않았다고 판단한 순간 두 남학생이 슬며시 손을 올렸다. 전업주부의 ‘쓴 맛’을 모르거나 남성성 특권 유지의 대가가 예상외로 클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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