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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을 가다
김재홍 송연 지음. 한얼미디어 펴냄. 1만5000원 |
생업도 팽개치고 길 위에 나선 부부 햇수로 4년, 신발 세켤레를 갈아신었다 옛지도 더듬어가며 걷다 복원하다… 말한다, 우리는 우리땅을 너무 모른다고
“길은 점에서 시작한다. 사람이라는 점과 점이 이어지면 마을이 되고 다시 마을을 이어 마침내 길이 된다.” 집을 나서 길 위에 서면 나그네다. 무엇하자는 나그네인가. “송 선비! 이번 과거길이 몇번째인가?” “난 처음일세. 김 선비는?” “과거는 무슨…. 난 국밥이나 팔아볼까 올라가는 걸세.” 영남대로, 그러니까 부산 동래에서 서울까지 950리 옛길 걷기에 나선 부부의 농기어린 첫 대화다. 이 부부는 김재연(48), 송연(37)씨. 인도 배낭여행을 위한 체력훈련 삼아 태안반도를 걸어보려다 우리땅에 매료되었다고 말을 하지만, 이들은 아마도 역마살이 끼었을 거다. 그렇지 않고야 멀쩡한 생업을 팽개치고 길 위에 나섰겠는가. 한사람이면 모르되 부부가 함께 죽이 맞아 나섰으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는가. 남편 말로는 혼자 길을 더듬다가 아내를 꾀었다고 하는데 여자들이 남자 꾐에 잘 빠지는가. 거꾸로라면 모를까. 그러니 모두 역마살이 끼었다고 할 수밖에….이들이 옛길 더듬기에 처음 나서기는 2000년. 2003년까지 햇수로 4년 동안 길에서 살았다. 아니 그것은 뻥이고 정확히 모른다. 재연씨는 서너 달이라고 표현했다. 그럴 것이다. 경상도에서 길을 물어 한 시간 거리라면 곱하기 2를 했고 충청도에서는 곱하기 3을 했다니까, 길에서의 시간이란 그렇게 탄력이 있지 않겠는가. 체력훈련 하다 옛길에 반하다 이들은 주로 6~9월 여름철을 택해 걸었고 나머지 계절에는 옛길을 복원하는데 바쳤다. 사람들은 이들은 보고 미쳤다고 했다. 벌써 5년 전 일이니 그럴 만하다. 부러움과 질투가 반은 섞였을 거라고 하지만 글쎄, 믿을 수 없는 얘기다. 오히려 걱정어린 시선이 쏠리지 않았을까. 대동여지도, 해동지도, 1872년 옛군현지도, 조선 총독부와 일본 육본 발행 지도, 현대 지형도 등을 겹쳐 가면서 지도상에서 옛길을 찾았다. 막상 이들이 길 위에 나섰을 때는 막막했다. 지도를 섭렵했기로 어디 옛길이 ‘여기요’ 하고 나서겠는가. 일자 표지도 없는 터. 아스팔트에 묻힌 길은 독을 뿜는 자동차들을 곁해야 하고, 철길에 묻힌 잔도는 조마조마 철마를 피해야 했다. 인적이 끊겨 수풀에 묻힌 길은 고추밭 매는 아낙의 기억 속에서 찾아야 했고, 논으로 스며든 길은 논둑길을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영남대로는 대구 칠곡에서 비오고 몸이 아파서, 삼남대로는 공주에서 끊어진 길을 이을 길이 없어 자료 찾느라 한차례씩 끊겼을 뿐 각각 보름과 열이레에 해당하는 날짜를 걸어 4000㎞를 더텄다. 남편 혼자일 때는 야영을 하고 부부가 같이 다닐 때는 여관을 이용했다. 밥을 주로 사먹고 하루 한끼정도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먹었다. 배낭은 13㎏ 정도. 그동안 신발 세켤레를 길에서 닳궜다. “버리다니요? 가보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발을 버렸느냐는 객적은 물음에 정색한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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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촌에서 문경으로 가는 길 중간, 영강 수십길 벼랑 위로 난 토끼벼루. 구절양장 수백년 이 옛길에는 보부상과 과거길의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걸었던 곳이다. 한얼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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