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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7 18:53 수정 : 2005.10.28 14:26

옛길을 가다
김재홍 송연 지음. 한얼미디어 펴냄. 1만5000원

생업도 팽개치고 길 위에 나선 부부 햇수로 4년, 신발 세켤레를 갈아신었다 옛지도 더듬어가며 걷다 복원하다… 말한다, 우리는 우리땅을 너무 모른다고

“길은 점에서 시작한다. 사람이라는 점과 점이 이어지면 마을이 되고 다시 마을을 이어 마침내 길이 된다.”

집을 나서 길 위에 서면 나그네다. 무엇하자는 나그네인가.

“송 선비! 이번 과거길이 몇번째인가?”

“난 처음일세. 김 선비는?”

“과거는 무슨…. 난 국밥이나 팔아볼까 올라가는 걸세.”

영남대로, 그러니까 부산 동래에서 서울까지 950리 옛길 걷기에 나선 부부의 농기어린 첫 대화다.

이 부부는 김재연(48), 송연(37)씨.

인도 배낭여행을 위한 체력훈련 삼아 태안반도를 걸어보려다 우리땅에 매료되었다고 말을 하지만, 이들은 아마도 역마살이 끼었을 거다. 그렇지 않고야 멀쩡한 생업을 팽개치고 길 위에 나섰겠는가. 한사람이면 모르되 부부가 함께 죽이 맞아 나섰으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는가. 남편 말로는 혼자 길을 더듬다가 아내를 꾀었다고 하는데 여자들이 남자 꾐에 잘 빠지는가. 거꾸로라면 모를까. 그러니 모두 역마살이 끼었다고 할 수밖에….


이들이 옛길 더듬기에 처음 나서기는 2000년. 2003년까지 햇수로 4년 동안 길에서 살았다. 아니 그것은 뻥이고 정확히 모른다. 재연씨는 서너 달이라고 표현했다. 그럴 것이다. 경상도에서 길을 물어 한 시간 거리라면 곱하기 2를 했고 충청도에서는 곱하기 3을 했다니까, 길에서의 시간이란 그렇게 탄력이 있지 않겠는가.

체력훈련 하다 옛길에 반하다

이들은 주로 6~9월 여름철을 택해 걸었고 나머지 계절에는 옛길을 복원하는데 바쳤다. 사람들은 이들은 보고 미쳤다고 했다. 벌써 5년 전 일이니 그럴 만하다. 부러움과 질투가 반은 섞였을 거라고 하지만 글쎄, 믿을 수 없는 얘기다. 오히려 걱정어린 시선이 쏠리지 않았을까. 대동여지도, 해동지도, 1872년 옛군현지도, 조선 총독부와 일본 육본 발행 지도, 현대 지형도 등을 겹쳐 가면서 지도상에서 옛길을 찾았다.

막상 이들이 길 위에 나섰을 때는 막막했다. 지도를 섭렵했기로 어디 옛길이 ‘여기요’ 하고 나서겠는가. 일자 표지도 없는 터. 아스팔트에 묻힌 길은 독을 뿜는 자동차들을 곁해야 하고, 철길에 묻힌 잔도는 조마조마 철마를 피해야 했다. 인적이 끊겨 수풀에 묻힌 길은 고추밭 매는 아낙의 기억 속에서 찾아야 했고, 논으로 스며든 길은 논둑길을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영남대로는 대구 칠곡에서 비오고 몸이 아파서, 삼남대로는 공주에서 끊어진 길을 이을 길이 없어 자료 찾느라 한차례씩 끊겼을 뿐 각각 보름과 열이레에 해당하는 날짜를 걸어 4000㎞를 더텄다.

남편 혼자일 때는 야영을 하고 부부가 같이 다닐 때는 여관을 이용했다. 밥을 주로 사먹고 하루 한끼정도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먹었다. 배낭은 13㎏ 정도. 그동안 신발 세켤레를 길에서 닳궜다. “버리다니요? 가보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발을 버렸느냐는 객적은 물음에 정색한 답변이다.

점촌에서 문경으로 가는 길 중간, 영강 수십길 벼랑 위로 난 토끼벼루. 구절양장 수백년 이 옛길에는 보부상과 과거길의 선비들이 목숨을 걸고 걸었던 곳이다. 한얼미디어 제공
이들이 어렵게 찾아내 걸은 옛길은 일제 강점기에는 수탈의 길이었다. 좀더 거슬러 오르면 동학 농민군의 함성이 들리고, 임진왜란 당시 왜적 침공로였고, 이순신 장군의 발자국이 찍혔기도 하고 유배 가는 다산 정약용의 탄식이 배었기도 하다. 하여 주변 경개나 보였을 법한 곳에서 옛 사람들의 해타를 경험하게 되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몽룡과 함께 걷기도 하였다.

나름대로 길 철학도 만들어져 ‘점과 점이 이어지면 마을이 되고 다시 마을을 이어 마침내 길이 된다’라고 그럴듯하게 읊게도 됐다. 길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임도 깨달았다.

<옛길을 가다>(한얼 미디어 펴냄)는 이들 역마살 부부가 길 위에서 살아낸 4년여 세월의 집적이다.

이 책을 읽어내기는 고역이다. 첫째 이들 부부가 낯설고 무엇보다도 옛길 자체가 낯설기 때문이다. 생판 모르는 부부가 하염없이 길을 걷고 또 걷고 했다는 얘기를 들어보라. 거기에는 등장하는 무수한 땅이름 고유명사가 실제로 그 길을 걸은 부부한테는 땀으로, 발의 물집으로, 배고픔으로 육화되어 있지만 책을 읽는 이한테는 활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힘들다. 문경과 점촌이 지도상에는 같이 표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4㎞ 떨어져 있었다고 아무리 힘주어 말해도 이들 부부한테야 하루를 더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었지만 읽는 이한테야 그게 그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까닭은, 읽어야 하는 까닭은 이들 부부가 길 위에 나선 까닭과 같다. 미쳤기 때문이 아니라 미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땅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길은 마을과 마을을,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과정’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마을과 도시는 하나의 결절점. 길이 시간을 두어 멈추고, 사람들이 모여 잠시 머무는 곳. 굳이 유행가 가사를 따지 않아도 우리네 삶은 ‘길의 나그네’ 아닌가. 길에는 사람이 흐르고 물자가 흐르고 사연이 흘렀다. 그것이 역사가 되어 마을과 도시에 고였을 따름. 영역을 넓힌 결절점들이 역사를 오로지하고 길을 팽개쳐둔 형국이다. 하여, 길은 마구 파헤쳐지고 덧씌워지고 쇠로 만들어진 짐승들로 채우고 있을 뿐. 사람들 그림자는 눈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고 다만 이들 부부처럼 ‘약간 맛이 간 인간들’이 주눅이 든 채 오갈 따름이다. 정녕 길의 명예를 회복할 길은 없을까.

사람과 이야기들은 어디갔나

나그네의 괴로움은 “보리밥 했응께 묵고가소”라는 시골인심과 산새와 다람쥐을 만나 깨끗이 씻어지듯이, 책읽기의 괴로움은 시아버지 찾는 고개의 다섯이름(멱조현, 훈조현, 여조현, 직동현, 미조현), 달래강의 ‘달래나 보지’ 전설 등이 머리쉼을 하게 한다. 땅이름과 행정지명이 따로 노는 현상, 역과 원을 물어도 대답을 듣지 못한 까닭 등은 새겨들어야 할 듯하다.

‘한여름 땡볕과는 다툴 일이 아니다’, ‘발바닥 물집은 실을 꿰어두고 걸으라’는 지혜, 지방도의 찻길번호(경기 300, 강원 400, 충북 500, 전북 700, 경북 900, 경남 1000, 제주 1100번대) 등도 좋은 정보다. 권말 옛지명과 현지명의 대조표와 한글 대동여지도는 아주 유익한 자료다. 부부금실도 구경거리!

이들은 옛 경흥대로의 길목인 의정부에서 ‘옛길따라’라는 주막집을 열고 짬짬이 옛길걷기를 하고 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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