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0.27 19:33 수정 : 2005.10.28 14:26

걸치다 : 입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두 가지 방법

[오늘의 연습문제] 괄호 안에서 알맞은 말을 고르면?

(입은|걸친)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

보람이가 교복 상의를 아무렇게나 (입은|걸친) 모습으로 나타났다.


[풀이]

옷을 입는다. 옷을 걸친다. 앞엣것에 비해 뒤엣것은 비교적 가볍게 해낼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옷을 입으려면 어느 정도 주의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옷을 걸치는 데에는 별다른 수고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이 터진 조끼나 자켓 같이 팔다리를 수월하게 끼워넣을 수 있는 입을거리에는 ‘입다’보다 ‘걸치다’가 어울린다. 혼자서 옷을 잘 입지 못하는 어린 아이라도 옷을 걸치는 일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다.

옷매무새가 단정한가 여부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단추나 지퍼로 앞섶을 여몄다면 ‘입었다’고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걸쳤다’고 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윗도리의 단을 아랫도리 안으로 넣었느냐 밖으로 냈느냐도 둘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와이셔츠를 입고 양복저고리를 걸쳤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비슷한 이유에서, 고대 로마인들이나 요즘 중동사람들이 입는 헐렁한 웃옷 같이 길게 늘어지는 통짜 옷은 ‘입는다’보다 ‘걸친다’가 더 자연스럽다. 긴 외투 같은 것을 ‘걸친다’고 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다. 이렇게 ‘걸친다’에서는 옷이 늘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한잔 걸친다’는 표현은 ‘걸치다’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이 말에는 비교적 가볍게 술을 마신다는 뜻도 있고, 술자리가 계획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느낌도 있다. 이렇게 ‘걸치다’에는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등등의 분위기가 있다. ‘의자에 엉덩이를 걸친다’는 표현은 ‘걸치다’의 부분성과 일시성을 보여준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엉덩이를 깊이 들이밀어 몸 전체를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의자 끄트머리에 살짝 걸터앉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걸치다’가 옷이 아닌 사물에 쓰였을 때 소량, 즉흥성, 부분성 등을 나타내는 데 비해, ‘입다’가 비유적으로 쓰이면 전면성을 띠게 된다. ‘사람의 몸을 입은 영혼’ ‘어머니의 넋을 입은 무녀’ 등의 표현이 그렇고, ‘은혜를 입는다’ ‘피해를 입는다’ 따위도 그렇다.

‘입다’가 옷으로 몸을 가리는 행위를 두루 가리키는 말이라면, ‘걸치다’는 ‘입다’의 한 종류다(‘입다⊃걸치다’). 두 낱말의 상대어가 공히 ‘벗다’임을 생각하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는 속담은 옷차림새가 깔끔해야 대접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약 ‘입은 거지’가 아니라 ‘걸친 거지’라면 ‘벗은 거지’나 매한가지로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진 요즘, 자칫 몸에 불청객을 맞지 않으려면 옷을 대충 걸치지 말고 단추를 남김없이 채우고 옷깃도 여미고 해서 제대로 입을 일이다.

[요약]

입다: 옷으로 몸을 가리는 모든 행위

걸치다: 간편한 옷, 헐렁한 옷, 긴 웃옷 따위로 몸을 대충 가리는 행위

김철호/국어연구가·도서출판 유토피아 대표

[답] 입은, 걸친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