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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3 19:24 수정 : 2005.11.04 15:57

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찬찬히 읽기

학교 도서관에서 책읽기
백화현 외 지음. 우리교육 펴냄

한 교사가, 지금은 번듯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섰지만, 그 때만해도 달동네였던 곳에 자리잡은 중학교에 부임했다. 얼마나 열악한 지역인지는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데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인지라 외려 한번 잘 해보고 싶다는 뜻을 굳게 세웠다. 그런데 그 야무진 꿈은 첫날부터 도전을 받았다. 학급평균이 63점이었고, 학부모들은 대체로 건축 일용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부모들의 경제 수준이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좌우하는 현실을 확인한 것이다. 순간, 맥이 풀리는 듯했다. 그러다 그 교사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런 형편의 아이들일수록 더 따뜻하게 보살피고 위로해주는 것이 교사의 사명이라 여겨서였다.

두 번째 충격의 해일은 사명감이라는 방파제를 훌쩍 넘어섰다. 아이들에게 지금껏 걸어온 길이나 꿈 이야기 따위를 글로 써보라고 했다. 너무 길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한쪽이나 한쪽 반만 쓰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반쪽도 채 메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마저 상투적이거나 형식적이어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꿈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생각할 줄도 모르면 어떡한단 말인가! 대체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을 사랑한만큼 고민과 갈등도 컸을 법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렵사리 찾아낸 방법이 정말 도움이 될런지, 자신이 그것을 꿋꿋이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학교도서관에서 책읽기>는 한 교사가 교육현장에서 온몸으로 겪은 문제상황과 이를 돌파하기 위한 교육자적 열정이 빚어낸 책이다. 아이들이 당장 한쪽짜리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생각하는 힘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 것은 꾸준히 책을 읽어오지 않아서 그러했다. 더욱이 책읽기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며, 스스로 성찰하게 하면서 기쁨과 위안, 그리고 휴식을 주지 않던가. 그렇다면, 길은 오직 하나 뿐이다. 학교도서관을 활성화하고 학생들의 독서능력을 키울 수 있는, 그러니까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독서수업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하는 것뿐이다.

이 책이 소개한 독서프로그램은 6단계 36차시로 짜여 있다. 읽고 싶은 마음 다잡기, 중심생각 끌어내기, 질문하며 생각 키우기, 분석하며 책읽기, 비판하며 책읽기, 작품 재창조하기 순으로 되어 있다. 각 프로그램별로는 수업목표와 수업전개, 그리고 활용자료와 학생들의 작품을 두루 실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교사가 융통성을 발휘하면 국어시간이나 재량수업시간에 당장 활용할 수 있도록 꾸민 것이다. 각별히 한 교사가 제안한 독서프로그램을 여러 교사들이 직접 수업시간에 적용해보고 문제점을 다듬은 결과를 모아놓은 것이라 완결성과 현장성이 돋보인다.

독서인증제나 이력철 문제가 불거져 나올 적마다 안타까웠다.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데도 강제적 형태의 독서를 강행하겠다는 처지도 잘못되었으나, 대안을 오로지 문화운동 논리로만 제시하는 쪽도 문제가 있다고 보아서다. 청소년들에게 독서동기를 불러일으키고, 책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이끌기 위해 학교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요구에 대한 현장의 답변이다. 갈 길이 멀고 어려움도 많겠지만, 믿건대, 이것만이 입시라는 유령에 사로잡힌 우리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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