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1.03 19:56 수정 : 2005.11.04 15:57

자크 아탈리의 인간적인 길
자크 아탈리 지음. 주세열 옮김. 에디터 펴냄. 1만2000원

미국이 주도하는 앵글로색슨 모델의 세계화 광풍은 테러와 내전 거쳐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것 영국 노동당·독일 사민당 ‘어설픈 좌파’에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가야할 길로 제시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정권 때 10여년간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 일했고,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 등의 저서로도 널리 알려진 자크 아탈리가 지난해 낸 <자크 아탈리의 인간적인 길>(에디터 펴냄)이 번역됐다. 서두에 현실정치에 대한 절망과 탄식을 늘어놓은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인간적인 길-새로운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로 돼 있다. 여기서 아탈리가 추구하는 것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해체와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시장의 횡포’를 극복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가 보기에 현재의 정치로는 좌우를 불문하고 거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오늘날 사회의 모든 동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시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그 둘이 결합된 역동성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장이다. 이 세계에서 “개인은 그가 버는 돈에 의해 평가되고 사회복지는 사적 보험의 영역으로 옮겨가며, 공공서비스는 본래의 영역을 잃고 국가는 시장이 조장하는 소득과 자산의 불공평한 분배구조를 바로잡을 수단을 박탈당하고 있다.” 그 결과 1국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국가간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인간은 ‘상품’ 세계는 ‘장터’

지금 ‘시장 민주주의’ 질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른바 앵글로색슨 모델의 세계화 광풍이다. 시장의 우위는 곧 인간 자신을 포함한 모든것의 상품화로 이어지며, 세계는 서로 적대적인 무리들이 휩쓸고 다니는 장터로 변해간다. 아탈리는 이를 ‘시장사회’라고 부른다. 시장사회는 상업적 목적으로 모든 것이 거래 가능한 ‘상품사회’로 옮아간다. 그것은 소유권과 대립하는 모든 것을 배격하는 ‘상업적 전체주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들 체제는 거기에 편승하거나 따라갈 수 없는 뒤처진 집단이나 체제, 따라가기를 거부하고 가진 자 위주의 과도한 자유와 변덕을 비난하면서 도덕의 이름으로 폭력에 호소하면서까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복고적인 권력의 회복을 주장하는 세력의 등장을 부른다. ‘도덕적 전체주의’다.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을 연상시킨다. 아탈리는 이들 시장·상품사회 및 도덕적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며 이미 내전과 테러 등의 형태로 전쟁은 시작됐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테러집단 등을 쓸어버림으로써 현재의 우위를 유지하려는 전략하에 도덕적 전체주의에 전쟁을 선포하고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이 보기에 이는 막대한 자국 재정적자를 메워주는 지역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전쟁광 노릇일 뿐이다.

아탈리는 시장과 타국의 도전속에 프랑스가 국가해체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며 4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1 세계와 직면하기를 피하다가 스스로 위축되는 것. 2 세계화 흐름에 적극 참여하여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생계가 취약해지는 문제의 확대를 받아들이면서 경쟁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 3 시장사회가 내포한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 부를 좀더 잘 분배하는 것. 4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시장이 지닌 최선의 측면을 민주주의가 가장 강력히 제공할 수 있는 것과 결합시키는 것. 1은 극우·극좌파 지향, 2는 자유주의 입장, 3은 시장 사회민주주의, 4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새로운 길’이며 ‘인간적인 길’이다. 원제도 그렇게 달았듯이, 아탈리는 당연히 4번이 다같이 살 길이라고 말한다. 3번을 앞세운 기존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사회복지 분야에서만 우파보다 좀더 강한 집착을 보일 뿐 실상은 여타 정당과 다를 바 없는 ‘(2번의) 자유주의적’ 정당이요 ‘어설픈 좌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등 ‘제3의 길’이니 ‘새 중도’ 따위를 내건 유럽 사민당 계열이 다 그렇다는 얘기다. 그것만으로는 무지막지한 시장사회의 도래와 상품사회로의 변화를 막을 수 없고 도덕적 전체주의와의 싸움도 해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생계불안을 유발하는 사회의 본질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


노동 그 자체가 기쁨·보상돼야

자크 아탈리는 기존 시장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우파 정당들의 정책과 별반 다를 바 없어 ‘시장의 횡포’를 막아낼 수 없다며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진은 지난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한 유럽 사회민주주의 대표자들인 게르하르트 슈뢰더(앞 오른쪽) 독일 총리와 토니 블레어(앞 왼쪽) 영국 총리가 기념촬영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브뤼셀/AP 연합
그러면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이미 기존 사민당 정책들과의 차이에 대한 지적을 통해 짐작할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언설들을 통해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사적 소유를 넘어서는 것이 집단소유가 아니라 무상제공이며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책임과 지식의 공유라는 점, 맹목적 권력인 시장을 넘어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좌우파의 진정한 차이는 시간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있다. 시간이 가장 귀중한 재화인 까닭은 인간이 생산·공급·교환·판매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창조적이고 자유롭고 유용하게 사용할수록 가치생산적이거나 우애 있는 방식으로 사용할수록 더 값어치가 커진다. …정치의 주된 사명은 하나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저마다 지상에서 허용된 시간을 최대한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돕는 것이다.” “임금노동자가 여기(시장경제의 고통스러운 작업과정)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기업을 소유함으로써 상품에 대한 권리에 참여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노동이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소유와 권한을 구별하는 데 있다. …노동을 통해 충분한 기쁨을 누림으로써 노동이 그 자체로 노동자 자신에 대한 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노동시간은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책임을 지는 시간이 된다. 노동외 시간 역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민주주의가 시장 사회민주주의와 구별되는 점은 시장 상품과 공공서비스에의 평등한 접근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에서 벗어난 영역을 확대하고 인간의 책임성을 강화하며 시간 사용에 있어서 상업적인 것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도록 돕는다는 데 있다.”

아탈리는 이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관계, 언어, 네트워크, 핵심재화 등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을 열거한 뒤 ‘국가 공동체에 대해 재고한다’에서부터 ‘세계정부의 탄생에 힘을 모은다’까지 그 실현을 위한 열 가지의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