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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3 20:17 수정 : 2005.11.04 15:56

아니메, 인문학으로 읽는 제패니메이션
수전 제이 네피어 지음. 임경희·김진용 옮김. 루비박스 펴냄. 1만6500원

만화영화 ‘아니메’를 통해 일본은 세계문화 중심부에 들어섰다 옴진리교 신자 상당수 종말론적 ‘아니메’ 팬일 정도로 일본인 사유방식 지배 그러나 식민지 침략역사는 무시 일본인에게 예술성과 역사성은 별개다

일본의 만화영화는 ‘저패니메이션’이라 한다. ‘특수명사’다. 일본에서는 만화영화를 ‘아니메’라 한다. 사투리로서의 ‘일반명사’다.

1993년, 폭격으로 파괴된 사라예보. 한 일본인 평론가가 도심의 무너져가는 벽에 걸린 세 개의 패널을 발견한다. 첫번째가 미키마우스의 귀를 단 마오쩌둥, 두번째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슬로건, 세번째는 <아키라>(오토모 가쓰히로)의 한장면을 담은 패널. 특수명사 ‘저패니메이션’이 일반명사인 애니메이션의 등가가 되는, 일본인의 사투리 ‘아니메’가 애니메이션과 등가가 되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일본 출판물의 50%가 만화방식

<아니메, 인문학으로 읽는 제패니메이션>(루비박스 펴냄)의 저자는 서문에서 이를 표나게 내세우고 이러한 인식은 시종을 관통한다. 아니메를 통해 일본이 세계문화의 중요요소가 되어있다는 거다. 여기서 아니메를 읽으면 일본이 통째로 보인다는 명제가 나온다. 아니메와 망가는 우키요에의 전통에 닿아 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1824년에 제작한 ‘어부 아내의 꿈’의 한 장면이 포르노 아니메의 ‘촉수성교’와 흡사한 점이 방증. 뿐더러 일본 출판물의 50%가 만화방식인 만큼 사유의 방식조차 지배하고 있다. 1995년 도쿄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사건과 관련된 옴진리교의 엘리트 신자 중 상당수가 종말론적 에스에프 아니메의 팬이었다는 점이 예.

지은이는 아니메가 종말론, 페스티벌, 애수 등 세 가지 표현양식을 가진다고 말한다.

종말론은 테크놀로지에 의해 좌우되는 지속과 붕괴 사이의 아슬아슬한 순간에 기반을 두므로 유연한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아니메의 특성상 서로 나뉠 수 없다. 인물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난다는 점에서 독특할 따름이다. 선호되는 이유는 원폭투하와 그 후유증, 도시화·산업화 사회의 소외, 세대갈등, 여자의 역할 증대에 따른 남녀의 긴장 등이다. 가장 특수한 요인은 1989년 주식시장 붕괴로 시작된 10여년 간의 경제불황. 전후 일본을 지탱하던 가치관과 목표가 허구였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페스티벌(마쓰리)은 일본인의 삶에 내재된 ‘통제된 혼돈’. 짧은 동안 권위와 위계의 혼란상태가 이뤄져 약자들이 힘을 갖고, 성역할이 깨지거나 역전된다. 이 상황은 강렬한 색채, 인물, 형태, 공간을 변형시키는 능력을 가진 아니메와 잘 어울린다. 여성 캐릭터들이 실제세계에서 갖지 못했던 힘을 발현하는, 순종적인 여성관 뒤집기 역시 페스티벌 성격을 띤다.

애수는 사랑, 젊음, 아름다움의 소멸에서 오는 무상의 미와 달콤쌉쌀한 즐거움을 찬미하는 서정적 전통과 관련된다. <공각기동대>에서 여성주인공 사이보그 쿠사나기 모토코가 빗속에서 보트를 타고 도시의 운하를 홀로 지나는 롱샷은 안도 히로시게의 목판화를 떠올리게 한다.

지은이는 △신체, 변신, 정체성 △마법소녀와 판타지 세계 △거대 서사 다시쓰기:역사와 마주 선 아니메 등 세 범주로 나누어 아니메를 총괄한다.

종말론·페스티벌·애수 세 양식

사춘기의 불안정성을 다룬 <아키라>는 종말론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아키라는 분해되어 뇌만 남게 되는데 그를 부활시키려 에너지를 모으는 과정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지구의 종말을 부른다. 루비박스 제공
신체변형은 그로테스크하고(<강식장갑 가이버>, <아키라>), 매혹적이기도(<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큐티 하니>) 하다. 또 사이보그에서 슈퍼히어로, 돌연변이에서 괴물까지 다양하다. 남녀 또는 인간이란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때로는 신체를 초월하는 새로운 정체성 제시하기도 한다.(<아키라> <공각기동대>).

예컨대 <아키라>는 정체성을 찾는 소외된 젊음에 대한 표현으로 종말에 대한 사이버펑크식 고찰에 속한다. 주인공 데쓰오가 끝부분에서 보여주는 기괴한 변신은 자신과 타인에게 기괴한 존재가 된 사춘기를 상징한다. 거대한 빌딩군과 모터사이클 폭주족은 권위·권력과 그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데쓰오는 암시적으로 자신을 버린 부모에 복수하는데, 억압하는 사회에 대항하여 파괴적인 승리를 거두는 젊은 이미지가 카타르시스 기능을 한다.

반전감정 있지만 역사적 반성 없어

일본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소녀문화’. 미성숙에 기반을 둔 애로티시즘, 귀여운 물건을 팔고사는 소비행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이 문화는 아니메에서는 ‘마법소녀와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냈다. 일본 남성들이 책임을 크게 요구하는 사회적 틀에 갇힌 반면 무정형의 소녀는 자유로운 변화의 잠재태다.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와 융합하는 인물이 여성인 쿠사나기라는 점, <란마 1/2>의 재미가 란마의 여성변신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포르노아니메에서도 여성의 변신능력이 진부한 구조에 자극을 준다. <유리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젊은 여성 캐릭터는 경계선 어름의 존재들이다. ‘마법소녀’들은 독립적이고 소녀보다 에로틱하지만 이해관계와 책임이 없는 점에서 소녀와 동일하다.

일본은 역사에 매료된 나라임에도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 2차대전 가운데 1941~45의 시기만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중국에서의 장기전이나 한국의 지배를 무시하는 경향이 그 예. 침략자로서보다는 원폭 희생자임을 내세운다. <맨발의 겐> <반딧불의 묘>가 그렇다.

<맨발의 겐>은 진주만을 공격하는 짧은 샷으로 시작하며 그때까지 10년에 걸친 중국 침략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원폭투하의 날은 달력과 째깍거리는 시계를 소재로 하여 강고한 힘의 흐름과 겐 가족의 일상성을 대비시켜 긴장감을 더한다. 반전 감정은 공유하지만 죄의식과 책임감은 모르쇠다.

<음수학원>에 등장하는 ‘지팡구’라는 마검. 한국의 어떤 공주가 이 고대의 명검으로 애인들을 참살하고 그것을 이용해 자위행위를 즐겼다고 설정돼 있다. 아니메의 예술성과 역사성은 일본인에게 완전히 별개다. 늘 그렇듯이.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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