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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3 21:44 수정 : 2005.11.04 15:54

‘명예와 자부심 먹고 산다’고 외치는 검찰
피로회복 자양강장을 위해선
박카스나 구론산도 있는데
굳이 명예와 자부심을 먹고 살까?
자기위안적 독백일까? 대국민 호소일까?

1.

검찰, 명예와 자부심 먹고 산단다. 떠나신 총장님이 그러셨다. 거짓말. 밥, 먹고 살면서. 먹고 산다 표현이 관용적으로 직업을 의미하기도 하니 그리 이해해도, 거짓말. 월급 받아, 먹고 살면서. 남들은 인권의 수호와 사상의 자유를 담론하고 또 한 편에선 구국의 결단 같은 피 뚝뚝 흐르는 거 막 선언해 버리고 그러는 사이, 난 겨우 이 말 한마디가 사건 내내 궁금했다.

왜 유독 검찰은 명예와 자부심이란 걸 별도 복용해줘야 하는 걸까. 피로회복 자양강장 위해서라면 <현대인의 필수 아미노산으로 각광 받고 있는 타우린 함량을 최근 1000mg에서 2000mg으로 2배 보강하여 효능을 한층 높인> 우리의 박카스가 있지 않던가. 영진 구론산도 있고.

총장님의 이 명예&자부심 검찰 필수 섭취론에 이의제기하는 검사들이 여태 전무한 걸로 보아 그 상시음용 주장이 검찰 내부에선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나 본데, 밥만으론 해소할 수 없다는 그 신비의 공복감, 과연 정체가 뭘까.

2.

검찰은 그 개개인의 학벌과 능력으로 보아 다른 일을 했다면 훨씬 높은 급여와 사회적 대우를 받았을 텐데도, 공공의 질서와 안녕이란 대의를 위해 이 업을 택했고 그래서 그 보상의 부족분을 명예와 자부심으로 알아서 메워내며 묵묵히 일하는 조직이다, 그런 희생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하소연인가. 그럼 이건 신세한탄인데. 그리고 이런 건 임금인상 위한 단체협상으로 해결할 일인데. 총장님 퇴임사는 그렇다면 검찰의 노조결성을 사표로서 촉구하는 비밀지령일까….

아니면. 검찰 직업의 특성상 한 번 봐달라는 온갖 종류의 상납 오퍼가 존재하나 그 모든 유혹을 오로지 명예와 자부심만으로 뿌리치고 있으며 또 형사 범죄를 상대하는 만큼 위해에 대한 공포가 상존함에도 또 한 번 명예와 자부심만으로 힘겹게 극복하고 있다는, 그런 척박한 제반 근무환경에 대한 토로인가. 그렇담 그만큼 검찰 해먹기 어렵다는 탄식인데. 글쎄 나름의 애로 없는 직업 없겠다만, 이런 고충처리는 주무장관인 법무부장관을 통해 국무회의에 건의하거나 정 자신의 직업이 버거우면 가까운 지인들과 전직을 논의할 일인데….

그도 아니면. 다른 사법연수생들은 변호사나 판사로 개인의 영달을 좇을 때 오로지 명예와 자부심 하나 보고 법조인으로서는 궂은 일이라 할 수 있는 검사가 된 것에 대한 후회, 그 선택에 대한 회한에 대해 우리에겐 명예와 자부심이 있지 않느냐는 내부인들끼리의 자기 위안적 독백인가. 만약 이거라면 자신의 진로선택이 어떤 고귀하고 품격 있는 기준에 의해 결정됐는지를 몰라주는 국민들에 대해 섭섭하다는 소리일 수도 있겠는데 글쎄 그거라면 원래 자기들이 좋아서 선택한 거 누굴 원망해….

혹여 이런 걸까. 검찰이 됐다는 건 중고 시절 모든 시험 전쟁을 승리로 치러내고 살아남아 사법고시라는 대한민국 최고, 최후의 시험까지 급제한 당대의 엘리트들이니 자금어대 하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치켜 세워주고 기운을 북돋워 주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대우해 주고 그렇게 국민들이 그들을 명예와 자부심 느끼도록 대해 줘야 더욱 힘을 내서 일 잘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런 대국민 호소인가. 그럼 그건 투정이고 어리광인데….

또는, 검찰은 정의로운 인재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스스로 다 알아서 판단하고 처리할 줄 아는데 아무리 주무부서의 장관이고 법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권한이 명시되어 있다 할지라도 우리 총장님이 절대로 안 된다고 못 박은 사안인데도 우리를 무시하고 그 명예와 자부심이 손상되게 간섭하고, 지랄이야, 씨발. 그런 항변인가. 그렇담 이건 상관에 대한 협박이자 그 권위 인정 못하겠으니 입법, 사법, 행정 말고 검찰도 분리해 4부 체제로 가자는 독립선언인데….

남들은 나라씩이나 지켜가며 분발하고 있는데 평소 한 가지 사안으로 30분 이상 고민하는 것을 삶의 치욕으로 여기던 난, 술 먹으러 가자는 주변인들과의 인간관계에 찰과상 입으면서까지, 매우 이례적으로, 벌써 몇 일째, 이걸 궁금해 하고 있다. 대체 그런 말을 한 이유가 뭘까. 아이 참, 궁금해라. 여하간 검찰은 명예와 자부심으로 먹고 산다는 이 말, 이 선언 바탕에 이 사태의 본질 한 덩어리가 깔려 있다 본다. 아님 말고. 가만 검찰은 다른 대부분의 직업들은 별로 명예스럽지 않고 자부심도 없지만 대우 좋고 돈 많이 줘서 억지로 계속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는 걸까. 그럼, 그냥 바본데….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PS - 고민하는 막간에 발견한 재밌는 점 하나.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이해에 결코 휘둘리거나 이용당하지 않겠다고 그 대장이 결연히 사표를 내던지며 울먹인 검찰은 바로 그렇게 대응함으로 해서 실제로는 또 다른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이해에 의해 마구 휘둘리고 이용당했다는 점. 매우 웃긴다. 이건 확실히 바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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