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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세계 최대 규모의 한의학 대학으로 거론되는 중국 상하이 중의약대 교정 한복판에 세워진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선생 동상. 중국 의학계에서 <동의보감>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한 단면이다. 상하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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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판은 물론 중국판·일본판 수십본 동아시아 의학 표준으로 우뚝 병 치료 중심 의학을 몸과 예방 중심으로 바꿨다 허준은 단순한 의사 넘어선 자연철학자
의학속 사상/④ 의학의 집대성(동아시아): ‘동의보감’ “우리나라 서적으로서 중국에 들어가 출판한 것이 매우 드무나 홀로 <동의보감> 25권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 그 판본이 아주 정묘하였다. 내 집에는 이 책이 없어 매양 우환이 있을 때는 이웃 사방으로 빌리고는 했더니 금번에 이 책을 보자 꼭 사고 싶었으나 말굽은 닷 냥을 변통하기 어려워 하염없이 돌아온다.” 1780년 연암 박지원은 자신의 중국견문기인 <열하일기>에다 이렇게 적었다. 연암이 본 것은 <동의보감>의 중국판 초간본(1768년)이었다. 이 책의 발간 동기에 대해 능어라는 중국학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책은 조선의 허준이 쓴 것이다. 그가 외딴 외국 사람이지만, 학문의 이치란 땅이 멀다고 해서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동의보감>은 이미 황제께 바쳐져 일국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여태까지 비각에 간직된 채로 있어 세상 사람이 엿보기 어렵다. 천하의 보배는 마땅히 천하가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1613년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이 책은 중국 사신이 꼭 챙겨가야 할 조선의 특산품으로 자리잡았다. 차츰 명성이 중국에 알려져 급기야 중국판이 나왔는데, 연암이 본 것이 그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이보다 50년 정도 앞서 1723년에 첫 출간이 있었다. 현대의 서지학적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까지 중국에서 <동의보감>은 무려 30여 차례 인쇄된 것으로 확인된다. 일본에서는 두 차례 인쇄되었다. 국내에서는 조선시대에만 대여섯 차례, 현재까지 십여 차례 공식 출간되었다. 필사본이나 요약본까지 합친다면 그 수요는 엄청났다. 중국에서 첫 출간 이후 평균 10년마다 한 번씩 출간되었다니! 과연 조선의 서적으로 외국에서 이만큼 자주 발간된 책이 <동의보감>말고 또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중국 의서 중에는 이만큼 자주 찍힌 책이 널려 있다고? 천만의 말씀, <중국의적통고>(1996)라는 책은 중국 고대 의서의 판본을 거의 빠짐없이 조사해놓았는데, 기초 서적이 아닌 임상의서 수천 여종 가운데 <동의보감>보다 자주 찍힌 것은 불과 대여섯 종에 불과하다. 중국 황제에게 바친 책도대체 어떤 이유로 <동의보감>이 이웃 나라에서 그토록 인기가 있었던 것일까? 1743년 중국의 왕여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글을 배우기 시작해서부터 의학서적을 즐겨 읽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의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허준 선생이 편집한 책인 <동의보감>을 얻었다. 그 책의 약물성미를 본다면 상세한 병세와 병증에 따라 변증하여 방제를 정했고, 또 그 도리를 밝혔는데 그야말로 의서의 대작이었다.” 곧 의학의 전체 내용을 조리 있게 정리했다는 것이 그의 소감이었다. 일본에서는 이 책이 쇼군의 명으로 편찬되었는데, <동의보감>으로 의학의 표준으로 삼겠다는 것이 편찬의 동기였다. “환자들이 책을 펴서 눈으로 보기만 한다면 허실, 경중, 길흉, 사생의 징조가 맑은 물거울에 비추인 것처럼 확연히 드러나도록 하였으니, 잘못 치료하여 요절하는 근심이 없기를 바라노라.” 허준은 <동의보감> 편찬의 대원칙을 이와 같이 밝혔다. 이는 모든 병의 원인, 증상, 예후 판단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것으로 의사와 환자 모두 간절히 소망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보자. 병과 증은 수백, 수천 가지가 되며, 약재와 처방은 수천, 수만가지가 된다. 병을 읽어내는 진찰법이나 침구법도 수십, 수백 가지 방법이 있다. 고대의 의학 서적에서부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당대의 저작까지 수백 종 수천 권이 이런 내용을 다투어서 담고 있었다. 특히 금원시대 네 명의 대가 이후 더욱 많은 의학 유파가 생겨나서 자신의 의학을 진리라고 외쳐대고, 무수한 처방이 난무하게 되었다. 이토록 허준이 구성해내야 할 내용은 방대했으며 복잡했다. 이런 내용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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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왼쪽)과 일본판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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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카이스트 연구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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