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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0 08:25 수정 : 2005.11.10 08:30

대성리에서 출토된 야요이 토기(굽다리 그릇)의 온전한 모습. 점선 안이 출토된 부분이다.

한반도 내륙 발견은 처음
한일 교류사 새쟁점 될듯

1800여년 전 일본 땅 왜인들이 만들어 썼던 야요이(미생·彌生) 토기가 현재 수도권인 경기도 가평 대성리 민박촌 부근에서 출토됐다.

기전문화재연구원(원장 장경호)은 최근 대성리 국민관광단지 안 경춘선 복선전철 구간의 원삼국시대 살림터 유적에서 2~3세기께 일본 야요이 시대의 굽다리 그릇(고배)의 파편을 발견해 조사 중인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이 토기는 일본에서 벼농사를 시작하고 금속기를 쓰기 시작한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서기 3세기)에 널리 쓰였던 흙 용기다. 국내에서는 일본과 마주한 경남 늑도와 전남 바닷가 유적에서 가끔 출토되나 깊숙한 중부 내륙권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당시 한-일 교류사 연구에 새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출토된 토기는 길이 7~8㎝ 정도로 굽다리 그릇에서 바깥으로 꺾인 주둥이와 그 아랫부분의 일부에 해당한다. 적황색을 띠며 표면 일부를 갈거나 금을 성기게 그은 야요이 토기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토기조각은 유적 들머리에 있는 깊이 1.4m, 너비 3m 정도의 저장구덩이에서 한반도 고유의 중도식 토기, 낙랑계 토기 등과 같이 출토됐다. 현장을 둘러본 다케스이 일본 후쿠오카대 교수는 “의심할 바 없는 야요이 토기”라고 밝혔다. 한국고고학회의 한 관계자는 “야요이 토기가 한반도 내륙에서 유통되지 않았다는 정설을 깨는 것으로 한-일 학계에 상당한 파장을 줄 것 같다”며 “당시 왜 물품과 왜인들이 한반도 내륙을 통과해 낙랑군 등 북부 국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토기가 발견된 대성리 유적은 대성리역 동쪽 북한강변을 따라 형성된 2~3세기께 원삼국시대의 유적으로, 이 시기 보기 드문 요철(凹凸) 모양의 각종 집터, 공방터, 철기류, 민무늬토기 등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은 곳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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