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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문화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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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오솔길에 건물이 놓이고 비대한 몸집은 점점 정취를 잃어간다 청춘들 고뇌의 진원지도 정치에서 경제로 이동 30년 전 고래 잡으러 동해로 떠난 그들은 이제 ‘블루오션’으로 출항한다
‘가을 잎 찬 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 캠퍼스 잔디 위엔 또 다시 황금물결 /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들 / 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 가을이 가네 / 하늘에 조각구름, 무정한 세월이여 / 꽃잎이 떨어지니 젊음도 곧 가겠지…’ (송창식 노래 <날이 갈수록>) 1975년 개봉된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나왔던 노래다. 이 영화는 한국의 영화사에서 캠퍼스를 무대로 하면서 대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첫 작품이었다. 그런데 위의 가사에서 드러나듯이 그 분위기는 사뭇 음울하다. 유신 독재의 억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저항이라고 해보아야 기껏 장발 단속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정도로 밖에는 표출되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들은 답답하고 허무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고래 사냥’에 나선다. 이는 당시 대학생들의 사회적 심리적 한계상황을 반영했다. 그 뒤로 80년대 사회변혁의 맹렬한 주역으로 대학생들이 나섰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청년 실업의 악몽에 가위 눌리는 오늘, 30년 전의 그 암담한 심경은 격세유전으로 재현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상황은 고뇌의 진원지가 정치가 아닌 경제라는 점, 그리고 이제는 멀리 동해까지 도망가지 않아도 거대한 정보세계와 현란한 소비문화에 빠져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덧붙여 연애는 점점 더 매혹적인 은둔처가 되어 준다. 캠퍼스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은 아리따운 청춘들의 연애담이 주를 이룬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은 각별한 공간이다. 지독한 학벌사회에서 대학간판은 인생의 ‘로드맵’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랜드마크’가 되어 왔다. 그러한 인식이 우리의 공간 지각에도 반영된 것일까. 수도권 전철의 역명 가운데 대학 이름이 들어간 것이 무려 20여개나 된다. 청소년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고, 졸업생들에게는 추억의 장소. 바로 캠퍼스다. 교정의 아름다운 경관은 그러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세워준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캠퍼스는 계절을 따라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공원이 되어준다. 그런데 최근 많은 캠퍼스들이 아담한 정취를 잃어가고 있다. 숲과 오솔길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높은 건물이 들어선다. 대학의 몸집이 커지면서 공간도 확장되고 복잡해진다. 대학들은 저마다 캠퍼스의 획기적인 개발을 통해서 위세를 떨치려 한다. 대학 내에서도 각 기구들 사이에 규모의 경쟁이 벌어진다. 그 결과 캠퍼스는 빠른 속도로 변신하고 있다. 그래서 캠퍼스를 처음 방문한 이가 학생들에게 어떤 건물의 위치를 물어보면 모른다는 대답이 점점 더 많이 나온다. 그 대신 교내 지리 정보에 가장 빠삭한 사람은 주차 관리 용역업체 직원, 그리고 인근의 음식점 배달부들이다. 교육학에 ‘잠재적 교육과정 (hidden curriculum)’이라는 개념이 있다. 교과 내용에 들어가 있거나 교사가 강의하는 것이 아니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에게 일정한 학습 효과를 발휘하는 요소들을 말한다. 거기에는 학교의 풍토, 교사의 문화, 학사 운영 시스템 등이 포함되는데, 그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물리적 환경이다. 건물과 교실은 그 자체로 텍스트로서 어떤 메시지를 발신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학은 건축에 어떤 교육철학을 담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난개발 속에 미아가 되어 가는 대학생들에게 대학이라는 말은 추상명사로 변해 갈 것이다. 오랜 만에 모교를 방문하여 자신의 학창시절이 담긴 풍경이 사라져 버렸음을 아쉬워하는 동문들에게 애교심과 기부를 기대하기는 점점 어려울 것이다. 캠퍼스의 비대화와 공간 변모 속에서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도 점점 희박해진다. 대학생들에게 가장 소통하기 어려운 상대가 누구인지 강의실에서 물어본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교수가 가장 많이 나왔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접촉면이 너무 비좁다. 캠퍼스 안에서 교수와 학생이 강의실 외에 편안하게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유 공간은 없다. 휴게실, 식당, 체육관, 벤치 등 어디에서도 교수와 학생은 섞이지 못한다. 그나마 대학원생들은 연구실이나 ‘교수 식당’에서 교수들과 시간을 함께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학부생들은 그런 기회가 거의 없다. 캠퍼스가 배움과 성장의 생태계를 담보하는 그릇이 되지 못하면, 대학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배움은 이제 젊은이들만의 독점물이 아닌 시대로 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노후 안식처로 대학주변 마을(college town)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대학이 제공하는 다양한 강의를 듣고 캠퍼스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몇몇 대학들은 그러한 수요에 부응하여 별도의 주택단지를 조성하기도 한다. 최근 한국에서 몇 년 사이에 곳곳에서 ‘평생학습도시’가 제창되고 있는데, 대학은 그 거점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또한 그것은 정원 미달로 존폐의 기로에 놓이는 많은 지방 대학들에게 새로운 학생을 발굴하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그를 위해서 대학은 캠퍼스의 근린지역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자체와 유기적 연계를 맺어 은퇴자들이 제2의 인생을 영위할 수 있는 멋진 삶터를 만들어내고 그들에게 평생학습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바야흐로 상아탑은 고령화 사회의 대안적 생활양식 창출에도 한 몫을 하는 것이다. 대학은 여러 세대가 공존하면서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지성의 전당이 된다. 30년 전 영화의 주인공 대학생들은 외로움과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고래를 잡으러 동해로 떠났다. 지금 대학생들은 선배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인생과 세상의 드넓은 ‘블루오션’으로 도전하고 싶다. 가을빛으로 더욱 고색창연한 캠퍼스는 그런 출항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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